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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Apr 13. 2023

‘팩트’면 ‘폭력’이어도 상관없을까?

존중과 배려가 없는 조언이란 무의미하다

 최근 자주 시청했던  유튜브 채널이 있었다. 지금은 후술하는 이유로 인해 관심을 끊었지만, 당시에는 운영자가 알려주는 업계의 적나라한 실상에 흥미를 느껴 주기적으로 시청했었다. 개인적으로도 관심을 두었던 분야였기에 흥미와 관심이 더 컸던 탓도 있었다.


 운영자는 본인이 업계의 전문가라는 ‘인증’을 내세우며 자신이 만난 고객들의 실상을 알려주었다. 물론 운영자는 본인이 직접 경험한 사실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성했고 그 중에는 나도 겪었거나 공감가는 사연들도 있었다. 영상의 썸네일이나 운영자의 어휘 구사가 약간 자극적이고 거슬리긴 했지만 ‘유튜브 갬성‘인 것을 감안하면 그럭저럭 들어줄 만했다. 적어도 사연을 허위로 왜곡하진 않았으니 그걸로 됐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상당 기간 영상을 시청한 후 이 채널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은 ‘무난함’에서 ‘불쾌함’으로 바뀌었다. 왜냐하면 컨텐츠의 상당수가 소위 ‘진상’ 고객들의 허물을 폭로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남의 흉보기는 바람직하지 못한만큼 유혹적인 얘깃거리이긴 하지만 도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성의를 다해 설득해도 자신들의 고집을 꺾지 않으니 채널 운영자 입장에서 지치고 좀 화가 날만도 하다. 어떤 사연에 이르러서는 운영자가 마치 ‘극한 직업’에 종사하는 듯이 느껴질 정도였다. 분명 일부 고객들은 요구를 넘어 트집을 부리고 있었다.


상대가 선을 넘었다고 해서 나도 똑같이 넘으면 싸우자는 말과 다름없다.


 하지만 그런 화풀이 혹은 하소연을 불특정 다수가 시청하는 거대 플랫폼에 여과없이 토로한다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내가 면전에 대고 너의 흉을 보는 상황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운영자의 의도가 어떠하건 그 고객들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뒷담화‘를 당했고 온라인에서 웃음거리가 되어 버렸다. 분명 그 고객들 중에서도 그 채널을 시청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자신들의 치부가 낱낱이 공개되는 것을 보고 뭐라고 생각했을까?


 진상 고객들을 무조건 옹호하려고 하진 않겠다. 또한 고객이 무조건 왕이라는 뜻도 아니다. 다만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도 엄연한 고객이고 상담 내용들은 보호되어야 한다. 타인에게 악의적인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약점이나 치부가 가능한 한 보호되고 비공개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진상 고객 역시 엄연히 그 권리의 대상이다. 채널의 운영자는 따끔하고 자극적인 말로 망신을 줘야 그들이 정신을 차릴 거라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결과 양쪽 다똑같다는 주위의 냉소적인 시선만 남고 말았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다한들 내 기분만 잠시 개운할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되지 못한다.


 옳은 말이라고 해서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조차 없이 마음의 상처를 안기며 전달해도 된다는 법은 없다. 그런 점에서 ‘팩폭’이라는 말은 다소 불편하다. 팩트’라고 해서 ‘폭력’이어도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명한 시구에서 말하듯 꽃도 때리는 데 사용하면 위험한 무기가 된다. 좋은 말은 단지 옳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하지 못하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어야 비로소 완결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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