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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Apr 15. 2023

여기에 K-POP의 어제와 오늘이 있습니다

에스엠 공식 애국가로 거듭난 ‘빛’

 지금에 와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1980년대 중반만 해도 연예인 육성 및 콘텐츠 제작은 엉성하고 주먹구구식이나 다름없었다. 체계적으로 연기와 노래, 작곡을 가르치는 전문가도 기관도 드물었고 동네 형들 및 방송국 선배들 어깨너머로 배워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전문적인 연예인 발굴과 육성 시스템을 구축한 연예 기획사가 등장하여 그런 풍토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연예 기획사의 시초로는 단연 SM엔터테인먼트(이하 에스엠)이 꼽힌다. 에스엠은 국내 4대 대형 연예기획사 중에서도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며 오늘날 한류 열풍을 이끈 수많은 스타들 중 상당수를 키워냈다.



 에스엠의 시작은 가수, MC, 라디오 DJ로 활동하던 29세의 이수만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던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학 중 미국 팝문화와 MTV에 영향을 받은 이수만은 단순한 엔터테이너를 넘어 연예기획자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귀국 후 가수를 그만두고 1989년 송파구에 SM기획을 설립한다.

 

  에스엠의 시작은 그리 평탄하지 못했다. 미국의 흑인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1호 가수로 키워낸 현진영이 대마초 사건과 필로폰 투약 등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등 여러 시련을 겪고 1995년 말이 되자 회사에 남은 건 어린 연습생들 뿐이었다.




 하지만 이 유망주들 중에 장차 에스엠의 전성 시대를 이끄는 주역들이 나오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H.O.T였다.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며 고된 연습 후 1996년 데뷔한 H.O.T는 ‘전사의 후예’, ‘캔디’를 통해 초대박을 터뜨렸고 이로 인해 에스엠은 본격적으로 전성시대를 맞게 된다. 이후 S.E.S, 보아, 장나라, 신화,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동방신기, 슈퍼 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엑소, f(x), 레드벨벳 등 K-POP의 어제와 오늘을 상징하는 스타들을 키워낸다. 2010년대 후반 이후로 에스엠의 위상은 과거만 못하지만, 한국 연예산업의 근본을 바꿔놓은 일등 공신이 에스엠이라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1997년 11월 발생한 외환위기는 굴지의 대기업들을 여럿 쓰러뜨렸고 이제 곧 선진국으로 도약할 거라 자신만만했던 대한민국 경제를 빈사 직전까지 몰고 갔다. 이후 몇 년간 수많은 사람들은 실직, 파산, 사업 실패 등을 겪으며 돈 때문에 말로 못할 고통을 겪고 슬픔에 눈물을 흘렸다. 지금에 와서는 ‘그럴 때가 있었지’라고 회상하게 되었지만 당시의 분위기는 나라의 미래를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암담했다. 세기말의 몇 년은 그렇게 아픈 기억으로 가득한 암울한 서사를 남겼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 시절은 오늘날 K-POP을 잉태시킨 1세대 아이돌 그룹의 전성기가 막 시작되던 시점이기도 했다. IMF 관리체제 돌입 후 1년이 흐른 1998년 11월 S.E.S, 핑클, 박지윤, 샵, 제이 등 가요계의 신성들이 앞다투어 데뷔 앨범과 후속작을 내놓았다. 군입대 후 자대 배치받은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때 내무반 TV에서 뮤직비디오 한 편을 보게 되었는데 영상에 등장한 그룹은‘ 간만에 본’ 3집 타이틀곡 ’빛‘으로 돌아온 H.O.T였다. 워낙 여러 그룹과 솔로들이 등장하던 시점이라 그들이 1~2집에서 ’전사의 후예’, ‘캔디’, ‘행복’ 등을 연달아 히트시켰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던 차였다.


“아~~맞아 H.O.T 새 앨범 나올 때 됐지.“


https://youtube.com/watch?v=dfN1UHjrzNg&feature=share


뮤직비디오는 다소 자극적이고 침울하며 참혹하기까지 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결국 모두가 행복하게 되었다는 그 시절 스타일로 끝을 맺는다. 또한 당시 IMF 사태라는 시대 상황 하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가사로 화제를 모았다.


늘 함께 있어 소중한 걸 몰랐던 거죠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 준 소중한 사람들을
가끔씩 내가 지쳐 혼자라 느낄 때 언제나 내게 힘이 돼 준 사람들을 잊고 살았죠

이제는 힘들어도 지쳐도 쓰러지지 말고 당신의 내일을 생각하며 일어나요
사업에 실패했어 사랑에 실패했어 그 어떤 것도 당신을 쓰러뜨릴 순 없어
알고 있죠 세상엔 당신 혼자가 아니란 걸 주저앉아 슬퍼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걸 아는 걸
우리 모두 일어나 손을 내밀어요 모두 다 함께해요

(후렴)
다 함께 손을 잡아요 그리고 하늘을 봐요 우리가 함께 만들 세상을 하늘에 그려봐요
눈이 부시죠 너무나 아름답죠 마주 잡은 두 손으로 우리 모두 함께 만들어 가요

(중략)

주위를 둘러보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죠
세상에 가득 차 있는 미움과 아픔들이 나를
서로를 미워하는 그런 마음들을
조금만 가슴을 열어 우리 서로의 사랑을 나누어봐요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씩 사랑을 보일 때 서로에 대한 믿음을 키워나갈 때
싸울 일 없어 기분 나쁜 일도 없어 서로 찡그리며 다툴 필요도 전혀 없어
우리가 꿈꾸는 눈 부신 빛이 저기 있어 아름다운 세상이 바로 저기 보여
우린 여기 서서 이렇게 말하고 있어 우린 H.O.T. let's party!

앞으로 열릴 당신의 날들을 환하게 비춰줄 수 있는 빛이 되고 싶어
이제 고개를 들어요 눈부신 빛을 바라봐요

모두 다 눈을 떠 봐요 눈앞에 세상을 봐요 꼭 마주 잡은 두 손으로 우리가 해냈어요
두려움은 없어요 슬픔도 이젠 없어 우리 마음을 여기에 모아 기쁨의 축제를 열어요


하지만 1,2집에 비해 큰 임팩트 없이 앨범 활동은 마무리된다. 그리고 이후 H.O.T의 전성기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문희준, 장우혁, 강타 등 멤버들도 솔로 활동을 시작하며 각자의 길을 간다. 이 곡이 20여년 후 새로운 버전으로 다시 불려질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채로~~








2022년 벽두를 즈음해 유튜브 알고리즘이 새로운 영상을 추천했다. 비록 구독은 하고 있지 않았지만 에스엠 공식 채널(SMTOWN) 정도의 ‘네임드’가 제공하는 콘텐츠라 열어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리고 추억 돋게도 흘러간 시절의 ‘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게다가 ‘싱어’는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에스엠이 배출한 역대급 스타들 수십명이었다. 그렇게 ‘빛’은 다시 돌아왔다.


https://youtube.com/watch?v=2fmxTXvPmEk&feature=share


사실 ‘빛’은 H.O.T를 대표하는 곡이라 부르기엔 모자람이 있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졌던 3집 수록곡인데다가 차트에서도 정상권에 오르지 못했다(참고로같은 에스엠 소속 S.E.S는 당시 Dreams Come True를 히트시키며 각종 차트에서 정상에 올랐다). 매니아 팬들 이외엔 발매 시기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물다.


하지만 에스엠의 어제와 오늘의 스타들이 모두 모여 노래하자 이 곡은 일약 시대의 ‘희망가’로 떠올랐다. 뮤직비디오에서는 노래 이후 2분 가량의 영상이 추가되고 스타들이 각자 팬들에게 희망을 가득 담은 새해 인사를 건넨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이 영상 자체가 그야말로 K-POP의 역사를 압축한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그 시절 나라 전체는 어려웠고 아직 혹독한 시련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때였다. 아직 두려웠고 슬펐으며 시련에 지쳐 서로 손을 마주잡기는 커녕 일어서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직은 기쁨의 축제를 열기엔 시기상조였다. 그랬기에 희망을 노래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마음 편히 웃는 날은 뒤로 미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이후 대한민국은 당당히 외환위기를 이겨냈다. 그리고 21세기 진입 후 20년 한국의 대중가요는 전세계로 진출하여 K-POP이라는 브랜드가 되었고 미국과 유럽 대도시의 콘서트 홀에서 공연한 아티스트들은 ’한류‘를 넘어 ’글로벌 스타‘로 거듭났다. 그리고 ‘빛’을 노래하는 수많은 스타들은 연말마다 팬들에게 희망이 담긴 인사를 건넨다. 많은 팬들이 댓글로 화답하고 찬사했듯이 이제 ‘빛’은 K-POP의 역사를 담은 ’시그니처 송‘이자 ’에스엠타운 공식 애국가‘가 되었다. 이제는 모두가 기뻐하며 웃을 수 있고 그래서 진정으로 축제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왔음에 감개무량하다. 그리고 앞으로 K-POP이 또 어떤 위엄을 보여줄지 한껏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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