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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Apr 27. 2023

미국 그리고 메이저리그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 야구와 축구

독서 외에도 간접 경험이 가능한 학습 수단은 많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도 책을 정독하듯 몰입하며 볼 수 있고 지혜와 깨달음을 얻어 갈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유튜브에도 잘 만들어진 수준 높은 콘텐츠가 많아서  몰랐던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동안 이 매거진에 서평 혹은 북에세이만을 써왔는데 영상을 요약하고 소개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확장하는 글도 가끔 연재하려 합니다.






채널명 - 지식브런치

영상 주제 - 야구가 세계화에 실패한 이유


https://youtube.com/watch?v=TT2AKWXhl0A&feature=share


19세기 중반 이후 영국은 전세계적으로 광대한 식민지를 보유하게 되는데 사정상 대부분의 식민지를 간접 통치했다.  이때 식민지와의 관계에 매개체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축구이며, 영국의 문화를 소개하고 페어플레이 정신을 전파하는 도구로 브랜딩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귀족의 놀거리 중 하나였던 축구를 평민들도 접하게 되었다. 각지에 수많은 클럽이 생겨났지만 프로 전환은 한참 늦었는데 이는 영국 특유의 고지식한 ‘선비 정신’ 탓이 크다. 영국의 귀족들은 숭고한 경쟁에 돈이 개입되는 것을 거의 모욕처럼 여기며 배척했다.


영국의 대외 팽창이라는 흐름을 타고 축구는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비슷한 시점 미국 남북전쟁 종료 후 사회가 안정화되고 경제가 발전하자 미국 사회 내에서도 여가 생활 및 즐길거리에 대한 욕구가 생겨나는데 야구는 이런 사회적 요구를 타고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다. 미국인들은 축구를 경멸했는데 수비만 해도 경기를 할 수 있고 무승부를 허용하는 것이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식민지배국이었던 영국에 대한 반감도 한몫했다).


다득점이 쉽고 끝장 승부를 볼 수 있다는 점은 미국인들을 크게 매료시켰다


 야구는 처음부터 해외 전파에 폐쇄적이었지만 돈에 대해서는 친화적이었다. 초창기부터 클럽 선수들에게 보수를 지급했고 이것으로 생계 유지가 가능했을 정도였다. 금새 야구는 상업화되었고 프로 전환의 길을 걸었으며 메이저리그에는 많은 자본가들이 투자한 거액의 자금이 몰려들었다. 돈 문제가 걸려있었기 때문에 각 구단은  퇴출 걱정없이 유지되었고 메이저리그는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으며 선수들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올랐다. 이러다 보니 굳이 해외 진출과 세계화를 할 유인이 없었다. 2006년부터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 시작되었지만 주최자가 메이저리그이며 이런 점에서 이 또한 세계화와 거리가 멀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구단 뉴욕 양키스. 선수 한 사람의 몸값이 거의 대기업 매출급이다.


 이 외에도 야구는 장비와 경기장에 대한 진입 장벽이 높으며 규칙 또한 매우 복잡하고 기술의 난이도도 상당히 높다. 게다가 유럽에는  아직도 미국 문화를 경멸하는 관습이 남아있으며 오랜 전쟁의 역사가 있다보니 사람들은 몸싸움이 거친 축구에 본능적으로 더 끌린다. 앞서 미국에서 축구에 대해 무승부를 허용하는 ‘쫄보’의 스포츠라 비하한다고 했는데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는 야구에 대해 격렬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밋밋한 종목이라고 평가 절하한다.






영화 ‘불의 전차’에서 캠브리지 대학의 육상 대표 선수인 해럴드 에이브러햄은 시합 출전을 앞두고 학장으로부터 “이기려고 아둥바둥하지 마라. 천박해 보인다”라는 꼰대스러운 충고를 받는다. 영국의 귀족들은 승리 뿐만 아니라 부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고 그런 풍토 탓에 프리미어리그 이전의 영국 프로축구에서 선수들의 몸값은 매우 낮았으며 구장 인프라, 중계권 등에서 전근대적이다 못해 원시적인 수준의 문제가 쌓여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리미어리그는 성장 과정에서 미국 프로스포츠를 적극 벤치마킹했고 그 결과 오늘날의 현대적인 외형과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이미 세계화가 되어있던 축구에서 인프라가 개선되고 인력 이동이 활발해지자 거액의 자본이 축구계로 몰려들었다. 얄궂게도 미국의 마케팅과 경영학 덕분에 영국의 축구가 회생한 것이다. 돈 벌어본 자들의 노하우 앞에 범용성 따위는 별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영국은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국가대표로 나간 선수들에게 굳이 승리를 권하지 않았다.


미국을 참고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프리미어리그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학 시절 독일어 수업에서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비록 내가 독일어 전공하고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결코 독일어는 세계 공용어가 될 수 없다고. 설령 독일이 세계 최강국이 되어도 그럴 거란다. 아닌 게 아니라 독일어 문법은 너무 복잡하고 동사 변화도 불규칙하며 발음도 거칠고 20-30여 글자의 합성어도 흔하다. 위 영상에서 축구의 쉬운 규칙과 개방성으로 보았을 때 설령 미국이 일찍 세계를 지배했더라도 야구의 세계화는 쉽지 않았을 거라고 했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야구만 했다하면 ‘판정 시비’가 발생한 데 반해 축구는 그저 어울려 공을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었다.  미국의 영향력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프로야구가 없었더라면 한국에서도 분명 축구가 우위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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