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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소년 Apr 27. 2023

맥주, 부드러움을 장착하다

오비의 반격 한맥

 채널명 - 14F 일사에프

 영상 주제 - 맥주와 쌀이 만나면?(feat. 한국 맥주 역사)


https://youtube.com/watch?v=0p60sqh-3LI&feature=share


OB(이하오비) 맥주의 역사는 쇼와기린맥주가 설립된 19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쇼와기린맥주의 조선인 대주주 중 한 사람이 바로 두산그룹 창업자 박승직 회장이었고 2000년대 초반까지 오비는 두산그룹의 계열사였다. 1948년에는 동양맥주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꿨는데 ‘동양식 양조’라는 뜻의 Oriental Brewery로부터 OB라는 이름이 유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비 맥주는 그 자체로 한국 맥주의 역사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맥주는 유흥주점 등에서 팔던 고급 술이었으나 중산층이 형성된 1980년대 이후 대중술로 포지션이 바뀌었다. 이미 맥주 시장 점유율 1위였던 오비는 거칠 것 없이 성장세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경쟁사들이 생기자 오비는 타 브랜드를 인수 합병하는 전략을 택한다. 1997년에 두산음료를 합병했고 1998년에는 벨기에 인터브루 사와 지분합작해 새 법인을 만들었으며 1999년에는 진로그룹 계열사 진로쿠어스맥주를 인수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비는 하이트맥주와 함께 국내 맥주 업계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한다. 2001년에 합병한 카스는 젊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이미지를 내세웠고 지금까지도 오비의 대표 브랜드로 군림하고 있다(카스를 처음 인수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두산그룹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2003년 오비를 매각했고 몇 번의 손바뀜을 거쳐 현재는 미국의 안호이저부시 인베브가 오비를 소유하고 있다.


인수된 이후 리뉴얼을 거듭한 카스는 오비의 ‘시그니처’ 맥주였다


 2000년대 이후 웰다이닝(well dining)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주류 시장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소비자들은 위스키나 와인, 브랜디, 보드카 등 다양한 주종을 소비했고 기존의 소주나 맥주 및 막걸리에서도 젊은층의 취향에 맞춘 다양한 제품이 출시된다. 2010년대 후반 들어서자 수입 맥주의 선호도가 증가했고 소비자들은 기존의 탄산 외에 다양한 맛의 맥주를 찾기 시작했다.


‘수입’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수입 맥주는 우리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다.


 오비는 10년이 넘도록 카스를 앞세워 시장을 주도했지만 2019년 하이트진로가 테라맥주를 출시하면서 점차 경쟁에서 처지기 시작한다. 카스맥주로는 더이상 맥주시장에서 1위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오비는 신제품 맥주를 개발하는데 이것이 바로 2021년 2월 출시된 한맥이다. 오비는 ‘대한민국 대표라거 프로젝트’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제품을 홍보했으며 맵고 짠 음식과 어울리는 쌀로 만든 맥주라는 제품의 스토리를 앞세워 전국의 한식 맛집과 합작 마케팅도 시도한다. 거품이 형성되는 모양을 연상시키는 디자인도 한맥의 브랜딩에 기여했다. 한맥의 부드러운 맛은 젊은 층에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대규모 회식이 대폭 줄어들었는데 조용히 집에서 한 잔 즐기기엔 기존의 탄산느낌이 강한 맥주보다는 한맥같이 부드러운 맥주가 선호되는 탓이 크다.


새로운 맛으로 맥주의 근본을 다시 정의하며 등장한 한맥








다이칸야마 츠타야를 설립한 마스다 무네아키는 이미 물건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품질을 다변화하지 않고 대량생산만 고집하며 효율을 추구하는 기업은 고객의 환영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고객의 성향은 꼭 필요한(need) 것을 넘어 열렬히 원하는(want) 것을 바라고 찾는 쪽으로 변하고 있는데도 많은 기업은 그저 많은 물건을 공급하려 할 뿐이다. 물론 시장 점유자의 위치에 있는 대기업이면 기존의 방식을 고집해도 당장 큰 문제는 없다. 오비 역시 맥주 업계에서는 메인 플레이어 격인 대기업이며 그동안 하던대로 탄산 가득한 기존의 맥주를 대량생산하기만 해도 되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비는 소비자의 취향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고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며 브랜딩에 힘쓰고 있다. 이런 오비의 행보를 보면 마치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말하면 자금력과 시스템을 보유한 대기업이 ‘각 잡고’ 준비하면 차원이 다른 도약이 가능하다는 뜻도 된다. 물론 한맥의 인기가 영원할 수는 없으며 향후 다른 제품을 출시했을 때 한맥만큼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맥주 회사들이 펼친 경쟁의 결과로 소비자들은 다양한 제품을 접하고 즐길 수 있게 되었으며 미식의 기쁨도 커졌다. 다른 부분을 차치하고 소비자 후생을 증가시켰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오비의 시도는 매력적이며 가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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