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현대서울은 어떻게 핫플의 지존이 되었나?
코로나 사태가 한창이던 2021년 2월 어느날 여주의 신세계 사이먼 아울렛을 다녀왔다. 봄이 가까워지던 시점 오후의 화사한 햇살 아래를 거닐며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조만간 야외 테마파크를 차용한, 자연과 쇼핑몰을 교차 편집한 공간이 등장하지 않을까 예상했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랜드오픈 당일 더현대서울을 실제로 방문해 보니 모든 것이 상상 그 이상이었다. 지하 2층부터 기존 백화점에서는 볼 수 없었던 브랜드와 편집숍으로 가득했는데 이질적이기보다는 힙하고 참신하며 매력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특히 자연 채광을 그대로 받아들인 5층의 사운즈 포레스트는 마치 공중에 떠 있는 하늘정원 같았으며 유럽의 국제 박람회장을 오마주했다는 느낌도 받았다. 하필 그랜드 오픈 당일이라 어디에도 머무를 수 없었고 ’오픈빨‘이 빠질 훗날을 기약하며 문을 나섰다. 개인적으로는 신세계 쪽에서 먼저 이런 시도를 할 거라 예상했는데 현대(백화점그룹)의 저력을 새삼 확인했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후기 산업사회로 오면서 기본적인 생활 욕구가 해결되자 사람들은 가슴 속에 자신의 ’로망‘ 하나쯤은 가슴에 품게 되었고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가끔 여가를 떠나며 자신만의 행복을 만들어갔다. 21세기가 되어 물질적으로 더욱 풍요로워지면서 이제는 가끔의 일탈로만 존재했던 로망을 일상 생활에서도 늘 곁에 두고 싶어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그 자체로 낭만적인 영화 같은 삶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런 성향은 MZ세대라 불리는 젊은층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아름다움과 즐거움, 설렘, 새로움, 환상 등의 가치와 자연스레 친숙해진 세대이이며 개인의 행복과 기쁨 그리고 취향의 추구를 그 무엇보다도 중시한다. 부모 세대보다 풍요롭게 자란 탓에 소비에도 적극적이며 이를 통해 필요를 채우는 것을 넘어 자신을 표현한다.
이런 고객들에게 기존의 규격과 룰을 따라 구성된 공간은 전혀 매력이 없다. 본문에서 언급한 ’가슴 설레게 하는 경험‘을 주는 공간을 찾아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가로수길, 연남동 등의 이면도로 깊숙한 곳에 위치한 매장들이 오직 실력과 매력으로 승부하여 큰 성공을 거둔 사례가 쌓여왔다. 이는 MZ세대가 ’힙‘한 매력에 얼마나 열광하는지를 방증한다. 건축물의 한계와 상권의 핸디캡을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고객들의 취향에 집중한 결과 더현대서울은 힙스터들의 ‘시그니처 플레이스’로 등극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현대백화점의 선택과 집중 그리고 과감한 승부수가 통한 셈인데 이 과정을 읽으면서 시대적, 공간적 맥락이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꼈다.
이제 단지 ‘스펙’에 충실하고 ‘각‘을 잡아 정리한 것만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직관적인 감각과 유쾌한 상상력, 틀을 깨는 과감함을 어필하지 못하는 공간은 아무리 화려한 제품 라인업을 갖추고 있어도 대중에게 외면받을 수 있다. 또한 첨단 기술을 이용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이를 통해 보다 다채로운 고객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도 중요해졌다. 중요한 것은 이런 기술은 항상 고객의 입장을 향해야 하며 작은 불편마저도 성의있게 해결해 주려는 적극성을 띠어아 한다는 점인데 이 점에서 론칭을 준비했던 현대백화점 실무진들의 고객 친화적인 태도가 돋보였다.
어느덧 2년이 넘어 오픈 당시의 ’사악한‘ 웨이팅은 사라졌지만 더현대서울의 질주는 멈출 줄을 모른다. 오히려 서울을 넘어 전국의 명소로 그 위상을 굳혀가는 중이다. 전국구의 메이저 백화점을(신세계, 롯데, 현대 등) 보유한 대구나 부산에서 올라온 고객들이 많다는 본문 서술을 읽으며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담이지만 사람들이 서울에 몰리는 이유가 꼭 일자리만은 아니다. 지방에도 나름의 먹거리와 놀거리가 많지만 서울의 ‘핫플’이 주는 재미, 설렘, 감동은 찾아보기 힘들다. 앞으로도 이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만나고 즐기며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헤어지며 울고 웃을 것이다. 그렇게 더현대서울은 19세기 말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절을 21세기 서울의 한복판에서 구현하며 사람들의 기쁨과 행복을 채색할 것이다.
여의도를 방문할 때면 특별히 살 것이 없어도 한 번씩 들르곤 한다. 다만 돌아보고 나오는 발걸음이 늘 가볍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공간이 편리함에 더해 특별함마저 겸비해 가는데 이 시대에 개인으로서 생존하려면 어떤 매력을 보여줘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무겁고 우울해지는 것은 피하려고 한다. 그 또한 재미가 ‘절대 미션’인 시대정신에 어긋나니까~~ 마케팅 트렌드를 익히고 세상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산책한다는 마음으로 부담없이 가보려 한다. ‘끊기엔’ 이제 너무 멀리 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