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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꼬리 Oct 07. 2023

적당히, 책방 열기

INFP 인간이 책방을 열고 싶을 때


  나의 인생 모토는 뭐든 적당히.

  좋게 말하면 스트레스 안 받는 무던한 성격이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닥치면 닥치는 대로 슬렁슬렁 헤쳐 나가는 게으른 대충주의자.

  책방도 적당히 대충대충 게으르게 열었다.


  내가 정해놓은 예산은 3천만 원.

  이 정도면 책방 말아먹어도 우리 집이 망할 정도는 아니고 빚내지 않고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만큼의 예산이었다.


  예산 중 가장 덩치가 큰 건 아무래도 상가 임대보증금이었다. 보증금이 2천만 원은 넘지 않아야 나머지 돈으로 책장도 사고 책도 살 수 있으니 최대한 보증금을 적게 받는 곳을 구해야 했다. 부동산에 혼자 들어가는 게 왠지 쑥스러워서 아이가 유치원 하원할 때마다 산책하듯이 함께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아이는 꽤나 유용한 존재였다. 성격상(INFP입니다...) 맺고 끊음을 확실히 못해서 마음에 드는 매물이 아닌데도 부동산 사장님의 이야기를 한정 없이 들어줘야 될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 아이의 칭얼거림은 굉장히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다. “그래? 이제 나가서 놀고 싶어? 그럼 가자~” 라는 말로 적당히 사장님의 말을 눙치듯 끊으며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 군데를 다녀 봐도 내 예산에 맞는 상가 자리를 찾는 건 힘들었다. 아무리 인적이 드문 곳이어도 3천부터 시작하는 게 현대사회의 시세였다. 보증금이 싸면 당연히 월세가 높았다. 책방을 하면서 월 100만 원 이상의 순수익을 낼 자신이 없었으므로 월세 100만 원 이상도 당연히 선택지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오며가며 편히 들어올 수 있도록 1층 자리를 구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가능하면 보증금 1천만 원에 월세 100만 원 이하의 1층 상가라니... 부동산 사장님들의 “에이~ 그런 자리는 저기 시골이나 가야 있지~” 라는 냉대와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예산에 맞는 자리를 찾아다니던 어느 날!


  드디어 내 마음에 적당히 드는 곳을 찾아냈다. 평소 자주 다니던 미용실과 같은 라인의 한적한 거리. 운양동의 단독주택 단지 바로 맞은편이었고 남향의 넓은 통유리창으로는 하루 종일 볕이 들었다. 가로수는 벚꽃나무여서 봄이 되면 너무 예쁠 것 같았고 도로 맞은편은 푸른 나무가 가득한 빈터였다. 여기라면 책을 읽다 언제든 눈을 들어 바깥을 바라보아도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파트 8층에 살며 2년 동안 앞동 뷰를 보며 살았더니 초록 뷰가 가능한 통유리창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두근거렸다. 심지어 월세는 내 예산보다 아래였다. 바로 직전에 무인아이스크림가게를 했던 자리여서 바닥과 천장은 분양할 때 그대로의 화이트 톤을 유지하고 있었다. 적당히 조명만 바꾸면 될 것 같았다. 크기도 부담스럽지 않은 딱 열 평. OK!


 저 여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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