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CI, 인지과학 연구자를 위한 인간 마음의 해부
저번에 Affordance에 대한 글을 쓴 이후로, 한참 뒤에야 글을 쓰게되었습니다. (물론 앞에 전혀 상관없는 글을 하나 쓰긴했습니다만..) 반성하겠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갈 길이 머네요.
What is Interaction?
Interaction이 무엇일까요? 번역하자면 상호작용? 그렇다면 인간과 도구, 인간과 인간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 것일까요? 아마 많은 분들이 인터랙션하면 결과로서의 행동 (Action)에 대해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화면 속의 특정 대상을 보고 (지각) 터치한다던가 (행동)의 것들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의 행동은 어떤 것들에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것일까요?
저의 저번 포스팅을 읽어보신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Gibson에 따르면 우리는 Affordance 때문에 행동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추상적 개념이 여러분께 얼마나 와닿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Norman의 설명(지금 Norman은 자신이 소개한 Affordance라는 개념에 대해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처럼 지각되어진 속성으로 인지 기제 속에서 나타나는 것일까요?
(Affordance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저번글을 참조해주세요.)
이를 좀 더 본질적으로 살펴보고자, 인간 마음에 대한 여러 이론과 그 역사를 살펴보고 우리는 어떤 관점을 바탕으로 연구해야할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HCI 혹은 인지과학을 공부하는 분들 대부분은 아시겠지만, 인지에 대한 전통적인 모델이 있습니다. 정보처리 모형 (Information Processing Model)이라고 부르는 이 모델은 '지각-감각기억-작업기억-장기기억-행동' 의 과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자세한 사항이 궁금하시다면 인지심리학이나 인지과학에 대한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장합니다(여기서 다루기엔 방대한 양이기도하고 많은 분들이 이미 알 것이라 생각해 생략합니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 (8, 90년대부터 지금까지) 학계에는 Embodied, Embedded, Extended, Enactive, Distributed, Situated Cognition 등의 단어들이 계속 등장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무엇이며, 함의하는 공통적인 속성은 무엇일까요? 처음부터 나름 꼼꼼히 짚어보겠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에 대해 거슬러올라가자면 유명한 철학가 데카르트까지 올라갑니다. 고교 시절 문과 나오신 분 혹은 학부 때 철학 교양 수업을 들어본 분은 아시겠지만, 데카르트하면 'Cogito, Ergo Sum' 이라는 유명한 문장이 항상 따라다닙니다. 우리 말로 번역하자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유명한 문장이죠. 대체 이 문장이 무엇이 그리 대단하느냐라고 궁금해 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철학사에서 인식론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문장입니다. 이 것도 길고 긴 이야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데카르트는 진리를 파헤치기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의 감각은 믿을 수 없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감각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의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존재 여부조차 불확실하다면, 이러한 의심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결국, 그는 생각을 하는 자신은 존재한다는 최후의 명제를 남기게 됩니다. 바로 'Cogito, Ergo Sum' 입니다.
자,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데카르트가 나눈 정신과 몸의 관계입니다. 데카르트는 '정신'은 중요한 것이며, '몸'은 믿을 수 없는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데카르트가 몸과 마음을 무 자르듯 나누어 심신이원론 (Mind-Body Dualism)을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데카르트의 철학 이후 몸과 마음은 다른 것으로 간주되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철학적 함의는 과학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심리학에도 이러한 영향이 뿌리깊게 남게되었습니다. 위에서 소개드린 정보처리 모형 또한 인간의 정신 과정 (Mental Process)에 초점이 맞추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통 속의 뇌
그렇다면 몸은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요? 여러 인지심리학 교과서를 살펴보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런 교과서에 따르면 다양한 감각기관을 지닌 몸은 다양한 input 값들을 받아 정신 과정을 통해 다양한 output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몸은 정신적 과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뿐이라는 한계를 지닙니다. 데카르트 시절에 비해 중요한 것이 되었을 뿐이지, 결과적으로 몸과 마음의 관계가 동등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 대해 어떤 학자들은 이렇게 비판합니다. 통 속의 뇌.
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싶습니다. 한번 같이 고민해보겠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는 뇌가 있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면 몸이라는 것은 그저 병들고 노화하는 한계를 지닐 뿐입니다. 그렇다면 뇌만 따로 떼어내어 살 수만 있다면, 영생하며, 무한히 생각하고, 사고의 폭을 계속 넓혀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 기술이 발달한다면 정말 이런 일이 이루어질 것만 같습니다. 이러한 소재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소설에도 나타납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의 컨텐츠 (영화, 만화, 소설 등)에도 뇌 이식 등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체 왜 어떤 학자들은 이런 멋진 내용을 통속의 뇌라고 부르며 조롱할까요?
뇌과학의 함정
최근 뇌과학 혹은 신경과학 (Neuroscience)라는 분야가 대세입니다. 미국 및 유럽에서는 이미 사람의 뇌에 대한 비밀을 밝히기 위해 수년전부터 천문학적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몇몇 유명한 학자들을 통해 대중에 많이 알려졌습니다. 또한 뉴런, 커넥톰 등의 전문 용어들이 끊임없이 매체를 통해 소개되고 있습니다. 뇌과학은 결국 인간의 신비를 밝히는 열쇠가 될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많은 분들이 이런 어려운 학문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실거라 생각합니다. 심지어 많은 학자들 또한 비슷한 반응을 가집니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뇌영상 편향 (Neuroimage Bias)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합니다. 뇌만 나오면 모두 두려워하고 대단한 것으로 여기는 문제인 것이죠. 물론 신경과학은 정말 복잡하고 새로운 학문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뇌과학의 대세는 대중들에게 이상한 믿음을 양산하는 것 같습니다. 바로 '뇌 = 마음' 이라는 명제입니다. 과연 뇌는 정말 마음과 동일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몸은 뇌의 지배를 받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뇌과학의 함정(정확히는 뇌의 맹신)은 위에서 언급한 심신이원론을 더욱 강화시킬 뿐입니다.
빼앗긴 몸에도 봄은 오는가
이번에는 몸(지각)의 중요성을 설명하려했던 사조와 철학가에 대해 간단히 소개드립니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저도 정말 문외한이기 때문 아주 간략히 소개드리겠습니다.
현상학 (Phenomenology)에 대해 들어보신 분들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현상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몇가지 쟁점들 중 하나는 '의식의 지향성' 입니다. 단어가 주는 어려움 때문에 진절머리가 나실지도 모르겠지만,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현상학의 창시자인 에드문트 후설은 우리가 어떠한 것을 마주할 때 의식이 그 곳을 향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마음 (의식)은 본질적으로 어떤 대상을 향한다는 것이죠. 우리 말 표현 중에 '마음이 간다' 라는 표현으로 모든걸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이건 극히 저의 주관적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계를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현상학자들은 이에 대해 에포케 (epoche)라는 것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이성적인 판단을 중지하고, 그 현상 자체의 흐름을 바라봄으로서 '의식, 그 자체'를 살펴볼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관(觀)이라는 것과 비슷한 내용을 가집니다. 이에 대해 중국의 용수보살이 어쩌고 저쩌고... 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계속 설명하면 여러분이 뒤로가기를 누르실 것 같네요.
자 한번 건너뛰겠습니다. 이제 다루어지는 철학자가 정말 중요한 사람입니다. 바로 메를로 퐁티입니다. 메를로 퐁티의 저작 중 '지각의 현상학' 이라는 중요한 출판물이 존재합니다. 제목에서 나타나다시피 퐁티는 '지각' 의 중요성을 강조한 현상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에 쉽게 설명이 되어있어 아래 소개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인간의 원초적인 인식 도구로서의 지각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철학적인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 특히, 인간적 관계의 대상과 나의 관계는 지각하였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 양자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주장한다." (나무위키, 모리스 메를로퐁티)
더 간단히 풀어보자면 '몸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지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며, 대상을 마음 속에 담을 수 있기에, 그 대상은 존재한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마음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몸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됨을 알 수 있습니다.
몸의 인지 이론
드디어 위의 지겨운 이야기 끝에 처음에 소개드린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과 그 친구들(Enactive, Embedded, Extended 등) 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부터 또 지겨운 이야기 2탄이 시작되는건 함정 아닌 함정. 아마 감이 오셨겠지만, 이 이론들은 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먼저 Enactive Cognition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드리고, 나머지는 모두 Embodied Cognition이라는 이름 하에서 통틀어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실제로 넓은 의미에서의 Embodied Cognition이 위에 소개드린 다양한 인지 이론들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Enactive Cognition은 지각과 행동의 무한한 순환 과정이 우리를 움직인다고 이야기합니다. 결과적으로 마음의 구성 또한 이를 바탕으로 형성이 된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여러분이 책상을 만진다면(행동) 책상의 촉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지각), 그 지각을 바탕으로 우리는 다시 행동하며, 이와 같은 끊임없는 순환 과정이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Enactive Cognition에서의 지각은 '행위 지향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몸이 없다면 마음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죠. 이에 대해서는 Noe의 'Action in Perception'이라는 책을 통해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Embodied Cognition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Embodiment를 번역하자면 체화라고 합니다. 체화라고 하면 와닿지 않기 때문에 '몸'을 매개한다는 말로 바꾸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Wilson이라는 인지심리학자는 'Six views of embodied cognition'라는 논문에서 Embodied Cognition의 6가지 특징을 소개합니다.
1. 몸에 바탕을 둔 인지
2. 행위로서의 인지
3. 환경이 인지체계의 한 부분인 인지
4. 인지적 정보처리 부담을 환경에 내려 놓는 인지
5. 시간 압력 하에 있는 인지
6. 상황지워진 인지
위의 자세한 특징들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Wilson의 논문을 읽어보시길 권장합니다. 단,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의 중요성이 크게 강조되었으며, 이러한 것들이 환경과 상황 속에서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뇌 속에나 존재하는 마음이 이제는 몸과 환경으로까지 확장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사실 Embodied Cognition 또한 너무나 다양한 내용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더욱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다면 체화된 인지를 (거의) 최초로 주장한 Varela, Thompson, Rosch의 책 을 추천드립니다(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음에도 정말 정말 어렵습니다...)
또한 이정모 교수님의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접근과 학문간 융합 이라는 페이퍼도 강력 추천드립니다. 저의 글보다 100만배쯤 더 잘 정리되어있고,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시) 다시 뇌과학
왜 다시 뇌과학으로 돌아오셨는지 궁금하신 분들이 계실듯합니다. 왜 다시 돌아왔느냐하면 최근 뇌과학적 실험을 통해 embodied cognition 혹은 enactive cognition 등을 지지하는 결과들이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죠. 이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탑 저널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뇌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이라면 한번 살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굳이 일일히 언급하진 않겠습니다(우리에겐 구글이 있으니까요).
이를 뒷받침하는 심리학적 실험들이나 HCI 연구들도 많지만, 여러분은 뇌과학 편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허무하지만 중요한 결론
사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굉장히 허무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뻔한 내용이거든요.
그래도 한번 결론 지어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인간(Human-Body&Mind)도, 그 대상(Object)도, 그리고 그 관계(Relation)도,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주변환경(Environment)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 것은 사회적(Social)으로 물리적으로(Physical) 모두 이해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Interaction은 이 모든 것들이 비빔밥처럼 잘 섞여 나타나는 아주 복합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라는 문장이 떠오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전체적인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에만 집착하곤 합니다. 그런 부분을 항상 경계하고 인터랙션이란 아주 다양한 요인들의 총체 혹은 그 이상임을 잊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아마 이 글을 연구자분뿐만 아니라 실무를 보시는 분도 읽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위의 결론은 실무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내린 이 허무하면서도 중요한 결론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용 중 중간 중간 잘못된 내용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저보다 더 잘 아시는 독자분들께서 지적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 달아주시면 반영해 수정토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