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즐거움을 안겨주는 동반자

by 이운덕
흰 구름 속, 이랴 !, 이랴 !, 소 모는 소리
가파른 산 비늘 논둑 푸르게 하늘로 올라갈 듯
견우야, 직녀야 너 왜 하필 오작교냐
은하수 서쪽 가에 조각달 배 떠 있는데

산행, 연암 박지원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지만, 실제 여행을 자주 가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일어나지도 않을 '걱정'때문인 경우가 많다. 여행을 계획하고 출발할 때쯤 되면, 항상 일이 생기고, 돈에 여유가 없고, 함께 갈 사람들이 없지만 여행은 그러한 걱정을 덜어내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걱정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생기는 것에 반해 '하필'은 다른 사람, 다른 환경과 비교해서 생기게 된다. 특히 여행 중에 '걱정'과 '하필'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여행의 참 맛을 느끼기가 어렵다. 그냥 여행자체가 살아왔던 환경이 다르고, 항상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여유로움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잉카의 도시 마추픽추까지 가는 길은 사람들의 발길을 최소한으로 하여 신비의 도시로 남고 싶어 한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1시간 30분을 비행기를 타고 '쿠스코'에 도착하여 3시간 이상을 거의 비포장도로로 달려서 히드로일렉트리카에 도착하면 다시 1시간 30분을 잉카트레일을 이용하여 오얀타이땀보로 가고, 다시 곡예하듯 산비탈을 달리는 버스를 20 분타고 올라가야 마추픽추의 정경을 볼 수 있다.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중에 '하필'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4시간 이상을 기다린 보람은 세상에서 가장 선명한 마추픽추를 붐비는 관광객 없이 여유로이 즐길 수 있었다. 기차를 기다리던 사람들 중 2/3 이상의 관광객이 폭우로 인하여 관광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DSC_9416.JPG?type=w773 페루, 히드로일렉트리카
DSC_9481.JPG 페루, 마추픽추

러시아 이르쿠츠코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호수로 연결되는 시베리아 열차를 타는 여정이 있었는데, 시베리아열차는 예상 탑승시간보다 1시간 빨리 출발해서 기차를 놓친 적이 있다. 늦어서 기차를 못 탄 것이 아닌 상황이 어떻게 보면 황당하였지만 러시아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경우라고 한다. 결국 버스로 갈아타서 열차를 따라잡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일정의 변화 덕분에 환바이칼기차에서 내려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통나무집에서 예정에 없던 식사를 하게 된다. '하필'이 '행운'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DSC_0791.JPG?type=w773 러시아, 이르쿠츠코
DSC_1071.JPG?type=w773 러시아, 바이칼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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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_0908.JPG?type=w773

라트비아 여행에서는 일행들과 잠시 떨어져 있던 시간 중에 천연동굴 앞에서 '백만 송이 장미'를 연주하는 현지의 악사를 보게 된다. 백만 송이 장미 원곡인 라트비아의 '마리냐가 준 소녀의 인생'을 '하필'이면 길을 잃은 덕분에 감상하게 된 것이다.

DSC_3029.JPG?type=w773 라트비아, 구트만 동굴
DSC_3031.JPG?type=w773
KakaoTalk_20220710_080907317_11.jpg?type=w773 미국, 유타주 자이언 국립공원
DSC_2634.JPG?type=w773 미국, 네바다주 세븐매직 마운틴스

영화 러브어페어(Love Affair)의 촬영장소로 유명한 타히티는 천국보다 아름답다는 곳인데, '하필'이면 너무 일찍 다녀와서 세상에서 더 아름다운 곳을 찾기 힘들다고 하는 아쉬움이 있을 정도이다.

boowoon_535.jpg 타히티, 보라보라
boowoon_525.jpg?type=w773 타히티, 보라보라

'하필'은 세상 여유를 다 가져갈 만큼 파괴적인 존재이지만,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다 주는 동반자이기도 하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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