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늑한 추억들
나비가 나뭇잎 밑에서 비를 긋다.
비를 긋다 : 잠시 비를 피하여 그치기를 기다리다.
'비를 긋다.'라는 말은 가슴 설레게 하는 말이다. 길지 않은 문장이지만 입에서 머물다 살짝 내뱉는 듯한 느낌으로 툭 던져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서둘러서 비를 막거나 비내림을 원망하지 않고 비를 피할 곳을 찾아 자연스럽게 그치기를 기다리는 여유를 보여준다.
“...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후에야, 마지막 남은 물고기가 잡힌 후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돈을 먹고살 수 없다는 것을...”
북미 대륙 인디언의 언어는 순수한 목소리로 길게 마음을 전하며, 느림의 철학을 보여주는 데 반해서 '비를 긋다'처럼 짧은 문장에서 듣는 사람을 설레게 하는 것은 우리나라 언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기도 하다. 단순히 비를 피하는 행위를 넘어, 인생에서 잠시 멈추고 상황을 받아들이며 시간을 즐기는 철학을 담고 있는 것이다.
여행의 행복 중에 하나는 좋은 날씨와 함께 하는 것이지만 가끔 예기치 않게 쏟아지는 비를 만나면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이내 그 비를 맞이하고, 그 비와 함께 하는 순간들을 즐길 준비를 한다. 비를 긋는다는 것은 단순히 비를 피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순간을 여유롭게 즐기고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장소는 참 다양하다. 작은 카페의 창가에 앉아 이방인이 되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일, 작은 처마 아래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잠시 쉬는 일, 커다란 나무 밑에서 잎사귀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듣는 일 등. 각각의 장소는 그 나름의 분위기와 감정을 선사한다. 카페에서는 따뜻한 커피 향과 함께, 작은 처마에서는 그리움이, 공원의 나무 밑에서는 자연의 생명력을 느끼며 비를 긋는다.
비를 긋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같은 장소에서 비를 피하는 여행자들, 그들과 나누는 짧은 대화들은 우리의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나누는 대화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듣고, 비에 관한 추억을 공유하며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간다.
비가 그친 후에는 상쾌한 공기와 함께 다시 여행을 재개한다. 비를 긋는 동안 쌓인 추억과 기다림의 여유를 마음에 담아 발걸음을 한층 가볍게 걸어본다.
"비를 긋다"는 단순히 비를 피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여유롭게 받아들이고, 잠시 멈추어 그 순간을 즐기는 철학이다. 여행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비를 긋는"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순간을 조금 더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여유를 즐기며 사는 삶, 그것이 바로 "비를 긋다"가 가져다주는 아늑한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