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기억이 쉬어가는 자리

by 이운덕

나는 여행길에서 자주 고양이를 만난다. 사람보다 먼저 카메라에 잡히는 건 익명의 고양이들이다. 좁은 골목의 낮은 담장 위에서, 햇빛과 그림자 사이를 오가며 그들은 아무 일 없는 듯 앉아 있다. 그들의 몸짓엔 어떤 의미도, 어떤 목적도 없다. 다만 그 순간을 통과할 뿐이다. 그 무심함이 어쩐지 사람보다 깊어 보여 나는 자꾸 셔터를 누른다.

DSC_5268.jpg @네르하 프리힐리아나, 스페인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속 화자가 그러했듯, 나 또한 여행이라는 한 걸음 옆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듯하다. 자연스럽게 여행을 다니면서 풍경보다, 음식보다, 사람보다 ‘고양이의 시간’에 더 마음이 가게 되었다.
비록 그들은 말하지 않지만, 눈빛으로, 어깨의 쉼으로, 꼬리의 흔들림으로 세상과 대화한다. 나는 그들의 침묵 속에서 오래된 문장의 울림을 듣는다.


“무사태평해 보이는 이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그 문장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어머니는 평생 시장에서 채소를 팔았다. 손톱 끝마다 초록물이 배어 있던 분이었고, 남을 속이는 장사보다 흙을 좋아하셨고, 영악한 계산보다 자연스레 내려지는 햇살을 믿으시던 분이었다. 어머니의 삶은 언제나 단단했지만, 마음 한쪽에는 말없이 스며드는 그늘이 있었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 고요한 슬픔이 얼마나 깊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여행지의 고양이들은 어쩐지 그 시절의 어머니 같다. 누구보다 단단하지만, 그 단단함 속에 부드러운 체념이 잔잔히 비쳐 있다. 나는 그런 고양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어머니의 웃음과 뒷모습을 본다. 그래서일까, 카메라를 들이밀면서도 셔터를 조심스레 누르게 된다.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시간을 스친다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어 올린다.


세상의 모든 고양이에게는 제각각의 이름이 없고, 모든 여행자에게는 돌아갈 이유가 있다.
나는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서 있으면서 맑은 오후의 돌계단 위에서, 오래된 담벼락 아래에서, 도시 한가운데의 무덤사이를 거닐고 있는 또 한 마리의 고양이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DSC_0365.JPG @부에노스아이레스 리콜레타 공동묘지, 아르헨티나
오늘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DSC_0605.JPG @이르쿠츠크, 러시아
boowoon_376.jpg @타히티
DSC_2927.JPG @크로아티아
@티라나, 알바니아
DSC_0197.JPG @이스탄불, 튀르키예
DSC_7348.JPG @푸껫, 태국
2004-04-17오전52212.JPG @오클랜드, 뉴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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