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시절에 다른 사람이 내 곁을 지켜줄 거라 생각하지 말라.
해가 지면 내 그림자마저도 나를 버리기 마련이다.
이븐 타이마야(Ibn taymiyyah)
해의 움직임에 따라서 낮과 밤이 생기고, 그 움직임의 각도에 의해서 하늘빛은 변화무쌍한 풍광을 보여주고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티 없이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을 배경으로 자연과 도시의 화려함을 즐기고는 하지만, 해가 지평선, 수평선을 가로질러 떠오르거나 서서히 내려올 때 붉은색, 오렌지색, 청색, 보라색 등이 위아래로 물들고 섞이면서 하늘이 선사하는 팔색조를 감상하며 여유를 찾아보기도 한다.
일출전이나 일몰 후에 희미하게 밝은 상태를 박명(薄明)이라고 하는데 일출 전의 여명과 일몰 후의 황혼을 동시에 말하는 말이다. 단어자체가 인생과 연관되어 쓸쓸함을 보여주지만,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심신이 지칠 때 아름다운 하늘은 감상하며 잠시 설렘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해가 짧아질수록 나의 그림자는 길어지고, 화려한 노을빛이 마무리되면 어둠의 등장과 함께 나의 분신도 잠식되어 가겠지만 다시 떠오를 태양을 조용히 기다려 본다. 햇살이 하루의 끝자락에서 천천히 물들어갈 때, 하늘은 마치 마음의 가장 따뜻한 층을 터치하듯 부드럽게 변한다. 붉지도 않고, 오렌지도 아닌 그 사이의 빛. 시간마저 잠시 멈춘 듯한 찰나에, 공기 속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설렘이 피어난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처럼, 나의 시선과 하늘빛이 조심스레 맞닿는다. 석양은 미묘한 온도로 내 마음 깊은 곳을 비추고, 감춰두었던 감정들이 은은히 드러난다. 하루가 저물어 간다는 아쉬움보다, 지금 이 순간의 따뜻함이 더 깊이 스며드는 시간들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듯한 이 빛은, 나에게 다시금 설레는 마음을 가르쳐준다. 어쩌면 사랑도, 인연도 이렇게 서서히 스며드는 게 아닐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춰 선 나에게, 스며드는 빛은 오늘도 조용히 말을 건넨다.
“괜찮다고, 내일은 더 아름답게 빛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