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변한다

by 서한나

"채니, 엄마 죽어. 문 빨리 열어."

주먹을 쥐고 창을 두드렸다. 내가 다급하게 문을 두드릴수록 채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에어컨을 하루 종일 켜고 있어도 30도에서 내려가지 않는 오늘. 배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너무 땀이 흘러내려서 손으로 닦아냈다. 스크레이퍼로 물기를 모으듯이. 긴 바지를 입고 있었다. 다리가 후끈해진다. 면 티는 어느새 다 젖었다.

세탁이 다 돼서 빨래한 옷을 가지고 안방 베란다로 갔다. 건조기 없다. 안방 베란다에 천정에 부착하는 형태의 건조대가 있다. 요즘 해가 좋아서 빨래가 잘 마른다. 반나절만에 마르는 듯하다. 잘 마른 옷의 파삭파삭한 느낌이 좋다.

옷걸이에 옷을 걸었다. 걸어둔 옷걸이를 건조대에 널려고 베란다에 들어간 사이. 채니가 문을 잠가버린 거다. 안 그래도 요새 더위를 먹은 건지 머리가 띵하고, 컨디션이 난조다. 갑자기 머리가 더 띵한 기분. 기분 탓이겠지 싶어도 더운 건 사실이니까. 채니는 문을 열어줄 생각이 없다.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듯. 유리창을 벽 마냥 자기 오른팔을 붙이고 팔에 얼굴을 파묻고 서있었다.

핸드폰도 없고, 누가 올지도 않을 상황. 그나마 다행인 건 수도꼭지가 있는 베란다라는 것. 이게 다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식빵을 떠올렸다. 채니는 한 삼사분 정도 있다가 까치발을 들고 레버를 올렸다. 키에 닿지도 않는데. 아놔. 지금 쓰고 있자니 또 열받네.




남편은 집 안에 있는 베란다 문을 포함한 창문을 사용하고 나면 레버를 돌려서 잠금장치를 잠그는 습관이 있다. 처음같이 살 때 짜증 났다. 문 열고 베란다를 나가려고 문을 잡고 힘을 당긴다. 바로 열려야 할 문이 열리지 않는다. 보면 레버가 잠겨있다. 열고 들어가야 하니 동작이 하나 추가된다. 귀찮고 싫었다.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문을 잠그며 살아본 적 없다. 남편은 시댁에서부터 그리 행동했다고 했다. 왜 그런가 이유를 보니 문을 닫을 때 쾅 닫게 되는 경우가 생기면 반동으로 문이 살짝 열리기도 한다. 그걸 방지하고, 문이 살짝 열려 있게 됨으로 인한 열 손실을 막으려는 거였다. 나는 귀찮고 불편했지만. 나쁘니 고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 역시 좋은 습관만 있는 것이 아니니. 같이 사려면 서로 이해하는 혹은 포기하고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그게 궁상이라고 생각했지만, 남편에게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채니가 그걸 배워서 똑같이 한다는 거였다. 궁상이 대를 이어지는 건 싫다. 남편이야 그러든지 말든지, 내 새끼가 그러는 건 또 다른 문제. 보는 대로 그대로 따라 하니 이런 일이 생긴 거다.

채니가 문을 열어줘서 베란다에서 나왔다. 나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서 채니 양팔을 내 손으로 잡고 말했다. 요즘처럼 날이 더울 때 문을 잠가서 엄마가 나오지 못하면 위험하다고. 장난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채니는 장난이 하고 싶었다고 말하는데 뭐 어쩌겠는가. 할 말이 없지. 29개월 아기인데. 무슨 말이 통하겠는가. 위험했다는 느낌이라도 가져가면 다행이지.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콜라가 한 캔 보였다. 오예.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평소 탄산 좋아하거나 즐기지는 않지만. 지금은 보기만 해도 열기가 내려가는 느낌. 캔을 땄다. 소리마저 경쾌하게 들렸다. 한 번에 들이켰다. 물컵도 가져와 냉장고 정수기에 대서 얼음을 컵에 한가득 담았다. 그리고 물을 넣어서 단숨에 들이켰다. 술도 아닌데 캬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왔다. 나와 채니는 이 일이 있은 후 엄마와 함께 엄마 집으로 왔다. 채니의 여름방학을 보내기 위해서. 보내기라고 썼지만, 신세 지기다. 남편은 휴가를 하루 썼고, 나머지는 내가 오롯이 봐야 해서. 엄마 찬스 좀 쓰려고 했다. 아이는 내가 돌보더라도, 밥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으니까.

씻고 나왔더니 남편이 아빠랑 밥을 먹고 있었다. 나, 채니, 엄마는 먼저 먹은 상태. 나는 남편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귀에 대고 말했다. 오늘 너의 궁상 때문에 내가 죽을뻔했다고. 이 말을 귓가에 한 이유는 엄마랑 아빠가 같이 있었기 때문. 남편을 보고 따라 한 것이라는 걸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남편은 밥 먹다 말고 놀라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며 무슨 소리냐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엄마는 문짝 레버를 떼버리라고 했다. 아빠는 우리 집이 아닌 본인 집으로 잘못 들어 밖으로 돌면 쪽방이랑 연결돼서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듣는 사람 모두 놀라긴 했다. 나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젠 지난 일이라 웃으면서 말할 수 있었다.

식사 마치고 안방에서 누워서 쉬고 있었다. 남편이 오더니 나에게 말했다. 궁상이라고 말하지 말고 습관이라고 말해달라고. 내 속에 있던 말이 튀어나온 거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남편은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고. 미안해했다. 처음에는 남편 탓을 했는데, 생각해 보니 집에 건조기가 없어서다. 나중에 건조기 한대 들여야겠다. 아 물론 건조기를 사기 위한 빅 픽처는 아니다.




오늘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것을 기대하면서 하루를 시작하지는 않았다. 아침에 신청해둔 글쓰기 특강 듣고, 집 청소하고 엄마 집 가는 게 내가 생각한 오늘 하루였다. 사실 어제도 마찬가지다. 어젯밤 남편이 퇴근하면 같이 엄마 집을 가려 했지만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못 갔다.

늘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다. 직장 생활을 할 때 생각이 났다. 일할 때 통제적인 성향이 강하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에 화가 많았고, 예민하게 굴었다. 감정이 들쑥날쑥하거나 화가 많이 나던 것도 직장 생활할 때보다는 가라앉았다. 사실 일하기 전에는 통제적인 성향 아니었다. 직장 생활이 쌓이면서 그렇게 만들어졌던 거다. 지금은 직장 생활하지 않으니, 회사 일을 생각하면서 예측 불가능한 일이 생길까 긴장하지 않는다. 그러려니 하는 경우가 더 많다. 통제해야 할 부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또 육아를 하면서 계획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많이 깨닫게 된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에 집중하기보다 그럼 어떻게 할까를 먼저 생각하기도 한다.

고정되어 있는 것은 없다. 늘 변하기 마련이다. 중학교 때인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다. 사실 이건 잘 기억 안 난다. 그때 내가 대답했다. "쟤, 원래 저래요."라고. 선생님은 갑자기 표정이 굳고, 못마땅한 표정을 짓더니 "원래 그런 게 어딨어. 그런 건 없는 거야."라고 했다. 그땐 정답같이,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하고 떨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 것 같다. 속으로 '원래 그런 것도 있거든요. 안 바뀌는 것도 있거든요'라고 딴지를 걸었는데. 오늘은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엇이든 변한다. 내 생각도, 행동도,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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