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지에 거의 다 와간다. 주차할 곳을 찾아야 했다. 우리가 가려는 어린이 물놀이터는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에서 반대편이다. 마침 물놀이터 앞에 주차공간 하나 있었다. 남편은 좌회전했다. 유턴이 되는 곳은 아니어서. 좌회전해서 골목 안에서 차를 돌려 나오는데. 우리 바로 앞에 있던 차가 그 자리에 주차를 했다. 이런. 한발 늦었다. 원래 오던 방향에 차 댈 곳 있었다. 다시 길에서 유턴을 해서 주차했다. 내려서 이백 미터 정도 걸어야 한다. 가만히 서있어도 머리가 띵해지고, 땀이 나서 옷이 젖으니. 이백 미터라도 덜 걷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다. 차에서 채니 짐 챙겨서 내렸다. 남편은 아이스박스와 짐을 꺼내들었다.
반대편에 어린이 물놀이터가 보인다. 바닥 분수대도 있고. 물 미끄럼틀도 있고. 터널형으로 된 물 분사기도 있다. 물이 뿜어져 나온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는 생각 들었다. 채니는 오는 길에 잠들었다. 내가 카시트에서 벨트를 풀러 채니를 안았다. 잠이 덜 깬 채니에게 물 놀이터 왔다고 말을 해주니, 나에게 안겨있다가 반대편을 고개 들어 쳐다봤다. 잠이 좀 깨는 듯했다. 눈도 뜨고. 차에 내려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이에 주민센터 있었다. 걸어가는 도중에 주민센터에서 나오던 할머니 셋. 채니를 보더니 한마디 했다. 어디서 이런 자그마한 아기가 나왔냐며. 요즘 아이 본지 너무 오래됐다고. 채니와 나는 할머니들에게 인사했다. 할머니들은 웃으며 인사를 받아줬다. 우리는 횡단보도를 건너 물 놀이터로 갔다.
날이 더워서 인지. 인근에 어린아이가 없는지, 아이는 없었다. 할머니들도 아마 인근에 살 테니 인근에 아이가 없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간 지역은 민생회복 지원금도 다른 도시보다 오만 원 더 준다고 했다. 인구 소멸 지역이라는 거 같았다. 나는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남편은 그런 이유라고 했다.
벤치 한편에 자리 잡았다. 우리가 앉는데, 가까이 있던 바닥분수대가 작동했다. 물이 뿜어져 나왔다. 채니는 남편에게 안겨있다가 물소리를 듣더니 뭐지라고 말했다. 입은 떡 벌어지고, 눈도 커졌다. 오라고 말하며 좋아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자고 했더니 그냥 이 옷을 입겠다고 해서 설명해 줬다. 말귀를 알아들은 건지 순순히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작년에 샀는데. 아직 맞는다. 작년에는 좀 크긴 했다. 나는 옷을 갈아입기가 마땅치 않았다. 밖에서 채니랑 남편 노는 것 사진만 찍었다. 놀이터 한쪽 공간에 붙은 현수막. 가까이 가서 봤다. 매시간 사십오분 운영, 십오분 휴식이었다. 지금이 첫 타임. 두타임 놀면 맞을 거 같았다. 나는 아이랑 남편 사진 몇 장 더 찍다가 벤치에 앉아있었다. 한 타임이 끝났다. 작동되던 분수들이 멈췄다.
물놀이터에서 나온 채니와 남편 간식 챙겨 먹였다. 채니는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처음부터 좋아하더니 마음에 든 눈치다. 우리 집 앞에도 바닥 분수대 있다. 그곳은 채니가 무서워한다. 작동시간에 집에서 창 내다보면 보인다. 그렇게 보는 것만 좋아한다. 막상 분수대 앞에 가면 싫어한다. 나면 이 안아서 분수대에 가서 물 맞으려고도 해봤지만 싫어했다. 여기서는 막 뛰어다니고, 바닥분수대에서 나오는 물을 받아서 마시는 시늉을 하며 웃었다. 왜 나와야 하냐고 묻는 채니. 쉬는 시간이라고 말해줬다. 잠잠히 벤치에 앉아 내가 주는 빵과 우유를 먹고 마셨다.
다시 분수대 작동이 시작됐다. 채니는 물이 나온다며 나에게 이야기했다. 기린에 물 나온다고. 남편과 채니는 물놀이터로 갔다. 나는 짐을 정리해두고 차에 가서 좀 쉬었다. 시간 보니 휴식시간 다 되어 가길래 차에서 나왔다. 남편은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있었다. 채니는 스포츠 타월로 몸을 감싼 상태. 채니 옷 갈아입혀서 물놀이터를 나왔다. 나오면서 채니에게 점심 뭐 먹고 싶냐고 했더니 생선구이란다. 생선구이, 수육, 계란 좋아한다.
근처에 생선구이집 검색해 봤다. 남편은 내비게이션에서 검색했고, 나는 네이버에서. 남편이 말한 곳을 내가 찾아보니 수요일이 휴무라고 되어 있었다. 인터넷 창을 더 밑으로 내리니까 AI 추천 검색 장소와 비슷한 곳 이런 게 나와있었다. 생선구이랑 쌈밥같이 하는 집이 있길래 그곳으로 갔다.
우렁이 쌈밥정식을 시키면 된장찌개, 제육볶음, 생선구이, 우렁이 된장에 쌈 채소가 찬이랑 곁들여 나온다. 나랑 채니는 생선구이를 좋아해서 그 위주로, 남편은 제육 위주로 식사를 했다. 쌈 채소도 좋아하는 게 서로 다르다. 나는 케일이랑 적근대 위주로 쌈을 싸먹었고, 남편은 깻잎과 상추 위주로 먹었다. 솥밥이어서 마지막은 누룽지로 입가심(?)을 했다.
근처에 있는 메가커피에 갔다. 날이 덥기도 하고 매장 안에서 먹고 가려는 참이었다. 바깥 키오스크에는 사람이 주문하고 있었다. 들어가서 주문을 기다렸다. 종업원 두 명은 음료를 제조 중이었다. 주문대 앞에 서서 기다리며 메뉴를 보고 있었다. 밖에서 들어온 주문을 확인하러 왔길래 주문해도 되는지 물었다. 직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다른 곳을 보며 주문은 키오스크로 하라고 했다. 매장 밖을 나왔다.
옆에 있는 이디야로 갔다. 입구에 민생회복 지원금 사용할 수 있다고 쓰여있었다. 러키 비키다. 메가커피에는 붙어있지 않았다. 쇼케이스에는 뽀로로 음료도 있었다. 채니는 그걸 보더니 루피를 먹겠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보니 키오스크 주문이면 민생회복 지원금 쓸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직원에게 물었더니 키오스크로 해도 된다고 하길래 주문해서 음료를 받아서 마셨다. 안 그래도 메가커피에서 메뉴를 보면서 채니는 뭘 먹여야 하나 생각했다. 우리가 먹으면 자기는 왜 안주냐고 하니까. 모두가 먹을 수 있고, 민생회복 지원금도 쓸 수 있어 좋았다.
세제를 사야 해서 근처 마트를 갔다. 문이 잠겨있었다. 거기밖에 모르는데. 차로 둘러봤지만, 마트는 보이지 않았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르자고 하고 집 쪽으로 향했다. 제일 먼저 보이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그 옆에는 소방서도 있었다. 채니는 소방차를 보더니 소리를 높였다. 앨리스예요라고. 내가 세제를 살 동안 남편과 채니는 옆에 있는 소방서를 구경 갔다. 구경 갔다는 표현은 좀 그렇지만.
내가 세제를 사고 나와서 소방서 쪽을 봤더니, 소방대원도 채니와 남편 옆에 있었다. 차에 세제를 두고 셋이 있는 곳으로 갔다. 소방대원은 어린이집에 신청을 하면 소방대원들이 가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고 어린이집에 문의해 보라고 말해줬다. 구급차 옆에 같은 모양인데 색이 빨간 차가 있었다. 채니는 구급차를 보더니 아픈 사람이 탔나 봐라고 말했고. 그 옆에 있던 빨간 차를 보고 빨간 앨리스라고 했다. 소방대원은 그 차가 지휘관이 타는 차라고 말해줬다. 처음 알았다. 그런 차도 있다는 것을. 차가 종류가 다양했다. 각자 용도가 달랐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이 나도 처음이다. 소방차들 사이 틈에 사물함 같은 게 있었다. 그곳에는 소방대원 이름이 붙어있고, 각자 작업복들이 놓여있었다. 방화복에 묻은 검정이 눈에 들어왔다. 소방대원은 사진 찍어도 된다고 해서 소방차 앞에서 한 컷 찍고 소방서를 나왔다.
집에 와서 쉬는데 채니가 뽀요티비를 틀어달라고 했다. 텔레비전을 켰더니 뽀로로가 나와서 같이 봤다. 그다음은 레스큐 타요 가 나왔다. 프랭크, 앨리스, 에어가 주인공. 채니는 오늘 봤다면서 텔레비전에 더 집중하는 거 같았다. 이번 화 내용은 이랬다. 프랭크는 소방차인데, 사다리차처럼 생겨서 물 대포가 사다리 앞에 달려있다. 어느 정도 높이가 있는 곳까지는 화재 진압이 가능하다. 하지만 너무 높으면 물 대포가 닿지 않는다. 그리고 무리해서 사다리를 올리면 직각 높이가 되었을 때, 뿜어낸 물을 자기가 맞는다. 다른 자동차들은 그런 프랭크를 비웃는다. 에어는 소방 헬리콥터다. 공중에서 물 대포를 쏜다. 물이 한방에 꺼진다. 그걸 지켜보는 자동차들이 에어의 이름을 외치며 연신 환호한다. 이런 장면이 되풀이되니, 프랭크는 기가 죽는다. 자신은 쓸모없는 존재라며. 잠수를 타는 프랭크. 터널에서 불이 났다. 프랭크는 없어서 에어만 출동했는데. 터널 안을 진입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른다. 사라졌던 프랭크는 공원 같은 데서 혼자 생각하다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주고 최고라 말해줬던 한 아이를 떠올린다. 무너졌던 자존감이 회복되어 파이팅을 외친다. 화재 장소로 이동해서 사람들과 자동차를 구해내는 이야기로 끝이 났다. 생각보다 교훈적이었다. 사실같이 볼 때 내가 딴짓도 많이 한다. 오늘은 나도 소방서에서 차를 보고 와서인지 채니 만큼 집중해서 봤다.
몇 달 전 조카가 방문이 고장 나서 갇힌 적 있다. 소방대원이 왔다. 조카는 무사히 갇힌 방에서 나왔다. 소방대원 아저씨들 배웅하고 싶다고 해서 채니랑 남편, 아주버님과 조카가 같이 내려갔다. 그때 출동한 차를 보고 조카가 무슨 차라고 차 종류를 말했나 보다. 조카는 차에 아주 관심이 많다. 스쳐만 지나가도 어디 차인지, 차 이름은 뭔지 등을 줄줄 말한다. 차 종을 말하는 것을 들은 소방대원은 소방차라고 하지 않고 종류를 집어 말하는데 맞힌 아이는 처음이라고 했다고 남편이 와서 말해주는 걸 들었다.
그때 조카 이야기가 생각났고, 오늘 소방서에 가보니 차도 다양하길래 채니와 함께 소방차 종류를 찾아봤다. 우리가 찾아본 포스팅에서는 스무 가지가 넘는 소방차 종류가 있었다. 차 종류를 찾아보고 나서야 알았다. 이렇게 종류가 많다는 것을. 각기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종류가 필요한 거겠지.
차만 그런 게 아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있고, 아닌 게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잘 하는 것 부러워해봤자, 내 영역이 아니다. 자기 계발 처음 할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 하는 거 같은데. 나만 잘 할 줄 아는 게 없는 거 같고, 내 세울 게 없는 거 같아서 실망한 적 있다. 어떤 모임에 가서 다 같이 처음 모인 자리라 자기소개를 하는데. 내 순서가 중간보다 마지막에 가까웠다. 앞서 소개하는 사람들이 대표, 원장, 사장 등 듣는대도 대단했다. 나는 그때 회사원.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무엇을 말해야 하나 걱정하다 보니, 다른 사람 이야기는 잘 안 들렸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것도 없는데 말이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역할이 있다. 내가 남편의 역할을 할 수 없고, 남편이 나의 역할 할 수 없다. 각자 할 수 있는 선에서 자신의 맡은 바를 하면 그뿐이다. 오늘도 나로, 아내로, 엄마로, 딸로 충실하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