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실로 갔다. 빨래 바구니에 쌓여있는 수건. 꺼내서 세탁기에 넣었다. 표백제 한 스푼, 세제 반컵 넣고 알뜰 삶음 코스로 돌렸다. 주방으로 왔다. 설거짓거리가 쌓여있다. 고무장갑을 꼈다. 수세미에 세제를 한 펌프 해서 조물 거렸다. 거품이 난다. 설거지통에 담겨있는 그릇들. 하나씩 들어서 수세미로 닦았다. 물을 틀어서 헹궜다. 식기세척기가 있다. 하지만 한 번도 써본 적 없다. 전셋집. 우리 전에 살던 사람들도 쓰지 않았다. 남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쓰지 않은 거 같다. 우리 역시 그랬다. 처음 집에 들어올 때 종이봉투 꾸러미 받았다. 그곳에는 입주 시 빌트인 옵션 가전들 설명서, 열쇠 등이 담겨있었다. 받은 고대로 창고에 보관했다. 나갈 때 다시 줘야 하는 거니까. 혹여나 문제가 생기면 변상해야 할 수도 있으니 사용이 꺼려졌다. 식기세척기가 편하다는 생각도 못 했다.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던 터라서.
몇 달 전 엄마 집에 식기세척기를 들였다. 있으면 뭐 얼마나 편하겠어라고 생각했다. 로봇 청소기 편하다고 사람들이 그러길래 샀었다. 깔끔하게 청소되지 않을 때 많았다. 강아지 한 마리 키울 때였다.(결혼하기 전 일이다.) 유기견이었던 강아지. 이집 저집 떠돌다가 우리 집에 왔다. 배변 훈련이 잘되지 않았던 터. 우리 집에 와서도 가리지 못할 때가 있었다. 게다가 사람이 없으면 불안이 심했다. 여기저기 변을 보기 일쑤. 청소기 사용이 불안했다. 그 당시에는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로봇청소기가 개똥 위를 지나가는 바람에, 온 방이 똥칠이 되었다는. 어디에 똥을 싸둘지 모르니 불안할 때가 더 많았다. 청소역도 별로고, 여기저기 걸리기 일쑤. 없을 때 청소기가 돌아가면 깨끗해진다는데. 없을 때 어딘가에 걸리면 그 자리에서 멈춰버리니 별 소용이 없었다. 거진 십 년은 된 이야기니 지금은 달라졌을 수 있겠다만.
엄마 집에는 사람이 자주 모인다. 엄마는 셋째 딸인데, 장녀 같다. 무슨 일이 있으면 다 엄마가 나서서 한다. 이모들은 언니가 엄마라며 따르기도 하고. 엄마는 실제로 다른 모든 형제들 시집 장가를 보내기도 했다. 한 번 사람이 모이면 열댓 명이 족히 된다. 식사 한번 하고 나면 설거짓거리가 개수대로 가득 찬다. 다 같이 모였을 때는 식사 준비 당번, 설거지 당번 따로 있기도 할 정도. 처음 식기세척기 설치하고 개시하던 날. 그때도 모두 모여 식사를 했다. 아빠나 이모부는 애벌세척을 해서 식기세척기에 넣는 것을 보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거 아니냐며 별로인 것 같다고 했다.
처음 식기세척기를 사용해 본 나, 엄마, 이모들은 무슨 소리냐며 훨씬 편하다고 이야기했다. 아마도 일을 많이 하고 안 하고의 차이리라. 그 말을 들은 여자 넷은 무슨 소리냐며 소리를 높였다. 설거지하고, 물기 닦아서 넣으면 두 시간 정도 가는 거 같다고 이모들은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타임. 이모들은 말했다. 식기세척기가 있으니 앉아서 커피를 마실 일이 다 생긴다고. 세상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설거지를 하면서 생각했다. 나는 이제 식기세척기의 맛을 아는 자. 내 집을 사게 되면 식기세척기를 꼭 넣어야겠다고. 설거지하고 났더니 빨래가 다 됐다고 소리가 났다. 나는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와서 안방 건조대로 갔다. 수건을 탈탈 털었다. 하나씩 건조대에 널었다. 나는 소창 수건을 쓰고 있다. 새하얀 수건이 건조대 걸이마다 걸려있다. 넓은 면발 같기도 하고, 천 염색하는 곳 같기도 하고. 하얀 천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단정해지는 것 같았다. 다시 세탁실로 갔다. 이번에는 채니 옷 빨 차례. 세탁기에 넣고 아로마 세제를 넣었다. 버튼을 눌러서 아기 옷 모드로 세탁 시작.
청소기를 돌렸다. 창문을 자주 열어놔서인지, 먼지가 발에 밟힌다. 청소기를 매일 돌려도, 청소기 먼지 통은 매일 가득 차는 것 같다. 오늘도 먼지가 한 움큼 통에 찼다.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어디서 매일 이렇게 나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청소 마치고 세탁을 계속했다. 이불도 하나 빨았고, 색깔 옷, 검정 옷, 흰옷까지 종류별로 몇 차례 세탁을 더 했다.
세미나가 오후 한 시에 있다. 집에서 열한시 반에 나가야 한다. 얼마나 됐나 싶어서 시계를 쳐다봤다. 열한시다. 열한시 반에 나가야 하는데. 청소를 하다가 몸은 땀 범벅이 됐다. 다시 씻고, 식사도 챙겨 먹어야 하는데. 늦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하던 청소를 멈추고, 청소기를 정리했다. 샤워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옷을 챙겨 입었다. 오늘은 프리하게 가야지라는 생각. 날이 덥기도 했고. 청바지에 셔츠를 걸쳐 입었다. 어제 사둔 식빵 하나를 집어서 입에 물고, 가방을 챙겼다. 시간을 보니 열한시 사십분. 늦었다. 서둘러 집을 나왔다.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전광판부터 확인했다. 가장 빨리 오는 버스가 칠 분 정도 남았다. 늦을 거 같다. 집안일에 너무 빠져있었다. 어쩔 수 없다. 오 번 버스를 타고, 역까지 갔다.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책을 읽었다. 일전에 읽었던 책인데, 집에서 나올 때 눈에 띄길래 집어서 나왔다. 간결하게 글 쓰는 방법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책. 구월에 강의 하나 맡은 게 있다. 주제는 강사로 어떻게 강의 구성을 하는지에 대한 내용. 그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들고나왔다. 지하철역에 들어가면 전광판이 있다. 내가 타야 하는 열차가 이분 뒤에 온다는 내용이 쓰여있었다. 가방에서 버스카드부터 꺼냈다. 태그하고 뛰어서 계단을 내려갔다. 혹여나 놓칠까 싶어서. 이걸 놓치면 더 지각이다. 내려갔더니 사람들이 이미 줄을 서있다. 많이 서있는 곳은 네 명이 있기도 했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야 했다. 오십분 정도 타고 가야 하는데, 서서 가기는 싫었다. 걸어가다 보니 사람이 없는 곳이 있었다. 섰다. 조금 있으니 열차가 들어온다는 소리가 났다. 지하철이 들어왔다. 내가 선 칸은 3-4인데, 지하철 들어올 때 보니 빈 좌석은 3-2에 있었다. 양쪽에 몇 칸이 비어있었다. 저길 가서 섰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이 내렸다. 나는 혹시 모르니 그쪽으로 걸어갔다. 한자리가 남았다.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자리에 앉아 가방을 열었다. 가져간 책을 열었다. 간결하게 말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들이 눈에 띄었다. 본 내용들을 어떻게 강의에 녹일까 싶어서 여백에 메모를 했다. 책 보면서 가다 보니 어느새 내려야 할 역이다. 내리면 바로 환승할 수 있는 곳. 환승해야 하는 열차 시간부터 확인했다. 오 분 뒤면 도착이었다. 이것 역시 마찬가지. 이 열차를 놓치면, 십분이 더 늦어진다. 내리자마자 뛰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뛰어 올라갔다. 환승하는 역에 도착하자마자 전철이 왔다. 지하철을 타서, 내리면 바로 올라갈 수 있는 열차 칸까지 걸어갔다. 역에서 내려서 세미나장까지 다시 뛰었다. 다행이다. 한시 오분. 생각보다 많이 늦지 않았다.
뛰었더니 숨이 찼다. 숨을 고르고, 세미나장 문을 열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가방에서 물병부터 꺼냈다. 단숨에 물을 들이켰다. 세미나는 막 시작한듯했다. 사회자가 오프닝 멘트 중이었다.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세미나를 참석했다.
아침에 채니 어린이집 갈 때 크록스를 신고 갔다. 발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신발은 컸다. 두 사이즈 정도 큰 거 같았다. 발이 헐떡거리는데도 채니는 신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게 마음에 든다고 말하면서 절대 벗지 않았다. 신발이 헐렁 거리니 걸을 때 바닥에 끌리는 듯했다. 몇 차례 넘어지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벗지 않으니 그냥 신겨서 갔다. 어린이집에서 활동사진 보내온 걸 보니, 하필 외부 활동까지 했다. 큰 신발이 마음에 걸렸다.
세미나 마치고 집에 가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채니 발에 맞는 신발 하나 사줘야 할 거 같다고. 원래 신던 것은 지금 사이즈가 작아져서 더 이상 신지 못한다고. 오늘 큰 신발을 신고 갔다는 이야기 덧붙였다. 남편은 퇴근하고 오더니 신발 보러 가자고 했다. 세미나 마치고 집에 왔더니 다섯시 즈음이었다. 채니 데리고 집에 와서 간식 먹이고, 세탁기를 한 번 더 돌렸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저녁 준비가 늦었다. (못했다는 소리) 신발 사러 가는 김에 나가서 먹기로 했다. 나는 가까운 곳에 가길 바랐는데, 남편은 스타필드로 가자고 했다. 돈 낼 사람이 가겠다니 말릴 이유 없다. 운전도 남편이 하고. 알겠다고 하고 따라나섰다. 지하주차장을 나오자마자 빗방울이 앞 유리에 떨어졌다. 가는 길 세차게 비가 내렸다. 아침에 비가 온다더니 밤에 비가 왔다. 새로 빨래한 것 건조대에 널고, 말리려고 베란다 창문을 열어뒀는데. 열어놓지 말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필드에 가서 식사를 했다. 나는 솥밥을, 남편과 채니는 만둣국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신발을 보러 갔다. 채니에게 신발을 구경하자고 했더니 싫다고 했다. 자기는 지금 이 신발이 마음에 든다며. 스타필드에 갈 때도 고집을 부리며 큰 크록스를 신고 갔다. 겨우 매장에 들어갔다. 가는 길에도 신발이 커서 몇 번을 넘어졌다. 채니는 개의치 않았지만, 나는 마음이 쓰였다. 크록스가 한쪽에 보여서 가봤다. 채니 사이즈는 C8인데 사이즈가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마음에 드는 것도 없고. 한쪽 코너에 있어서 보다가 반대쪽으로 가보니 그쪽에도 크록스가 진열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채니 사이즈가 있는 게 뭔지 먼저 봤다. 사이즈가 있는 것 서너 가지 꺼내서 채니 발에 신겨봤다. 채니는 자기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신발이 좋다며 안 신는다고 해서 달래느라 진땀이 났다. 결국 신발을 신겨봤다. 그중 하나가 걸을 때 불빛이 났다. 남색 크록스인데 우주 행성 그림이 그려져 있다. 채니는 불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더니, 그게 좋다고 했다. 마침 사이즈도 있으니 그걸로 결정했다. 결재를 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신발을 바꿔신었다. 채니는 좋다고 말하더니 양손을 주먹 쥐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남편은 뒤따라 나가며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니는 스타필드 한가운데서 방방 뛰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나와 남편은 채니를 웃으면서 쳐다봤다.
무엇이든 내가 경험을 해봐야 좋은지 싫은지 알 수 있다. 로봇청소기는 남들이 좋다고 해서 구매했지만, 만족도가 낮았다. 식기세척기는 남들의 말처럼 편리했다. 오히려 불편한 게 아니냐고 할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채니도 우리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처음에는 자기가 신고 있던 신발만 고집했다. 막상 마음에 드는 신발을 발견하자, 신고 있던 신발을 바꿔 신을 수 있었다. 남이 말해주는 삶은 없다. 결국 내가 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