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니 빨래 바구니를 세탁기 안에 쏟아부었다. 세제를 넣고 문을 닫았다. 아기 옷 코스를 눌러서 빨래를 시작했다. 빨래가 끝났다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세탁실로 가서 문을 열었다. 채니 옷을 한가득 안고 거실 빨래 건조대 앞으로 갔다. 선채로 빨래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옷을 털어서 빨래건조대 살대에 하나씩 걸쳤다. 못 보던 바지 한 장이 손에 걸렸다. 어제 남편이 가져온 아이 바지인 듯했다.
남편은 어제 퇴근하면서 쇼핑백 하나를 들고 왔다. A가 줬다면서. 나는 듣기만 했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신발을 이것저것 꺼내보더니 바지도 있다고 언뜻 말하는 거 같았다. 그게 이 바지인가 싶었다.
검은색 면바지였다. 바지를 털다 보니 무릎 쪽이 보푸라기인지 뭔가 있는 거 같아 자세히 들여다봤다. 바지가 얼마나 낡았는지, 양쪽 무릎이 곧 구멍이 날 지경이었다. 약국에서 파는 거즈면보다 엉성하게 엉겨있었다. 이쑤시개는 거뜬히 통과할 거 같았다. 그 집 아이는 발로 걷는 게 아니라, 무릎으로 걷나 싶었다.
거실 바닥으로 바지를 패대기쳤다. 절로 나오는 욕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나 시발." 혼자 씩씩대며 마저 채니 옷 널었다. 오늘 해가 좋아서 빨래가 빨리 마를 듯했다. 거실 가득히 햇빛이 들어왔다. 빨래를 널다 보니 검은 바지가 한 장 더 있다. 주머니 쪽에 형형색색 날염 프린팅이 되어 있는 바지였다. 무릎부터 확인했다. 상태가 괜찮았다. 어제 남편이 바지가 한 장이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두 장이었나 보다 하고 널었다.
빨래를 모두 널고 나서 내팽개쳤던 바지를 집어 들었다. 쓰레기봉투에 쑤셔 넣었다. 쓰레기봉투가 거의 다 차서 쓰레기통에서 빼놨던 참이다. 겨우겨우 봉지를 여며 쓰레기통 옆에 뒀다.
저녁,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왔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남편은 뒷정리를, 나는 빨래를 갰다. 남편에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A는 여러 번 아기 용품을 물려(?) 줬다. 상태가 좋은 것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게 훨씬 더 많았다. 옷에 오염이 그대로 묻어있기도 했고, 신발은 너무 낡아빠져서 신기기 그렇다 싶을 때도 있었다.
대체로 버려야 할 것이 더 많았다. 어떤 때는 쓰레기도 같이 있던 적도 있다. 남편 알면 행여나 속상할까 넘겼다. 나는 좀 마음이 불편해도, 남편이 몰랐으면 싶었다.
가끔 들뜬 목소리로 남편은 전화 왔다. A가 옷이랑 장난감을 줬다고. 받아온 물건 상태는 늘 비슷했다. 당근 무료 나눔도 안 할 것 같은 걸 주니, 미친 새낀가 싶었다. '자기들 보다 형편이 좋지 않으니 무시하는가' 생각이 들다가도, 없는 내가 긁힌 거라 자위하기도 했다.
슬쩍 남편을 보니 베란다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아마 쓰레기봉투에 담긴 옷도 봤을거다. "A가 뭐 주면 받아오지 않으면 좋겠어. 아침에 세탁해서 널려고 하는데 보니 양쪽 무릎이 다 빵꾸나있더라." 남편은 말했다. 무작정 쥐여주니 받아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본인도 상태가 별로 좋은 것 같지는 않아도, 눈앞에서 거절하려니 민망했던 모양이다. 나는 입을 앙다물고, 빨래를 마저 갰다.
날염 프린팅된 바지를 집었다. 다리를 포개서 내 허벅지 위에 올렸다. 반을 접으려는 순간 엉덩이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찢어져있었다. 내 표정이 굳는 게 느껴졌다.(사실 보자마자 욕이 나왔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진정이 안됐다. 심호흡을 했다.
한 번 숨을 깊게 내쉬고, 남편에게 말했다. 이것도 찢어져있다고. 거절이 힘들면 내 핑계를 대라고 했다. 집에 놓아둘 공간도 없고 해서 이제 그만 받아오라고 했다고. 나는 찢어진 바지를 남편에게 들이밀었다. 남편은 구멍 난 바지를 보더니 그제야 알겠다고 말했다. 와이프 핑계까지 될 거 뭐 있냐고, 받지 않겠다고 했다.
찢어진 바지를 쓰레기봉투에 욱여넣었다. 단단히 묶었다. 쓰레기봉투에 넣은 건 바지 두벌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