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by 서한나

핸드폰이 울렸다. 채니 프뢰벨 선생님이다.

"오늘 저녁에 채니 보강 가능할까요?"

거절했다. 독서모임이 예정되어 있었다. 남편이 집에 도착하는 시간도 애매할 거 같고. 오면 저녁식사 시간도 겹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선생님 스케줄이 워낙 바빠서 보강이 쉽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조금 있으니 핸드폰이 또 울렸다. 엄마 전화였다. 엄마가 오늘 된장 담그는 날이다. 담그고 오는 길에 우리 집에 잠깐 들른다는 거였다. 엄마랑 같은 콜라겐을 먹는다. 마침 엄마가 제품이 떨어졌고, 내가 좀 넉넉하게 가지고 있어서 빌려주기로 했다. 전화를 끊고 엄마에게 빌려줄 콜라겐을 챙겼다. 마침 동생도 오늘 휴가라서 같이 온다고 했다. 채니가 어린이집 다녀올 때쯤이면 도착할 것 같았다.




독서모임 멤버인 진쌔미가 연락 왔다. 오늘 돌봄이 안된다고 해서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한다고. 독서모임이 취소됐다. 프뢰벨 보강수업을 한다고 할 걸 그랬나 싶었다. 그래도 엄마가 온다고 했으니, 좀 더 있다가 느긋하게 가셔도 될 거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동생도 오랜만에 오는데. 저녁도 먹고 가면 좋을 것 같았다.


남동생이 전화 왔다. 마트에서 먹을 거 사서 출발한다고. 한 시간 정도 걸릴 거 같다고 했다. 채니와 같이 전화를 받았다. 채니는 전화를 끊자마자부터 삼촌이 언제 오는지를 물었다. 좀 기다려야 한다고 했더니 거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삼촌이 보고 싶다며. 요즘 감정 과잉이다. 나는 채니를 달랬다. 삼촌 기다리면서 자전거 탈까 하고 물었더니 좋다며 빙긋 웃는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기 잠바를 가져왔다. 같이 옷을 챙겨 입고 자전거를 들고 문밖을 나섰다.


채니와 한 40분 정도 자전거를 탄 거 같다. 놀이터에서 놀던 중 전화가 왔다. 남동생이었다. 차가 행주대교 근처에서 퍼졌다는 것. 지금 견인차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못 온다는 소리였다. 알겠다고 조심히 들어가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채니는 자전거를 타느라 신나있던 상황이라 그런지 내가 삼촌이 차가 고장 나서 오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니 건성으로 대답하며 저 멀리 가버렸다. 나는 그런 채니를 뒤따라갔다. 만약 집에서 그랬다면 드러누워서 또 울었을 터다. 다행이었다.




남편은 내가 독서모임인 줄 알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 채니와 외식을 한다 했었다. 채니와 자전거 타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남편에게 전화했다. 엄마가 오려다 못 온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독서모임이 취소됐다고 말했다. 남편은 오랜만에 나가서 사 먹으면 좋겠다고 했다. 같이 뭘 먹을까 이야기하다, 오늘 아침 채니가 집 앞 치킨 집을 지나면서 치킨이 먹고 싶다고 사달라고 했던 게 기억나 말했다. 굽네 치킨을 시켜서 같이 저녁으로 먹었다. 마침 남편 월급날이기도 했다. 우리는 같이 식탁에 앉아 치킨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3월부터 옮기게 될 어린이집, 딸을 출산한 남편 친구 이야기, 진쌔미에게 받은 당근, 주말에 뭘 할지 등. 돈 버느라 한 달간 수고했다는 이야기도 빼먹지 않았다.


아침에 생각했던 나의 저녁은 독서모임을 하고, 진쌔미와 같이 저녁을 먹는 거였다. 점심에 생각했던 저녁은 엄마, 동생과 함께 저녁을 먹는 거였다. 진짜 저녁은 남편, 채니와 함께 치킨을 먹었다. 저녁이 세 번이나 달라진 날. 계획은 바뀌어도, 저녁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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