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딸기 케이크

by 서한나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주문한 케이크가 도착했다. 남편은 케이크를 받으러 나갔다. 집 근처에서 케이크를 사 갈까 했다. 아빠 상태도 어떤지 모르고, 먹을 수 있으려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엄마 집에 가서 내가 아빠를 보고, 결정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차에 타서 엄마 집에 가는 길. 케이크가 괜찮을지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했다. 괜찮은 케이크집이 있는지도 찾아보고. 일요일이라 그런지 열지 않은 곳도 꽤 있었다.


남편은 내가 검색하면서 케이크를 주문한 줄 안 모양이다. 엄마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물었다. 케이크는 언제 도착하냐고. 아마 도착할 시간 즈음으로 주문을 했을 터니 받아서 올라가려는 생각인듯했다. 나는 주문 안 했다고 말했다. 혹시 몰라서. 몇 군데 봐뒀으니까 아빠를 좀 보고 난 후 주문하겠다고 말했다.




현관문에서 번호를 눌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한두 번 와본 것도 아니고, 눌러본 것도 아닌데 말이다. 눈물이 차오르려는 게 느껴져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괜히 안고 있던 채니를 힘주어 안아본다. 번호 누르는 소리를 들었는지, 문안에서 엄마 소리가 들린다. 아빠에게 우리가 왔다고 말하는 듯했다. 현관문이 열리고, 우리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빠는 소파에 앉아있다가 현관 쪽으로 걸어 나왔다.

이 주만에 본 아빠. 왠지 얼굴이 더 수척해진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나에게 걸어오는 모습이 기운이 빠진 것처럼 보였다. 아빠는 웃으며 우리에게 어서 오라고 말했다. 채니는 차 타고 오면서 잠이 들었는데 깨지 않았다. 채니를 침대에 눕히고 거실로 나왔다. 엄마는 황탯국을 끓였다며, 장어만 구우면 된다고 했다. 엄마도 며칠 고생하더니 얼굴이 누렇게 뜬 거 같다. 아마 아빠보다 더 속앓이를 한 듯했다. 말없이 엄마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엄마 옆에서 점심 먹을 준비를 했다.

점심 준비하면서 케이크를 주문했다. 배달의 민족에서 케이크로 검색했더니 제일 먼저 있던 집. 리뷰에 만족스럽다는 평이 많았다. 주문하고, 결제를 시도하는데 품절이라고 떴다. 딸기 케이크로 바꾸니까 결제가 됐다. 순간, 마음이 설렜다. 맛있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배달 무료 쿠폰이 있어서 한집 배달로 주문했다. 라이더가 잡히지 않는 모양이다. 배달 시간이 계속 늘어났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라이더가 콜을 받지 않는 거 같은데, 그럼 어떻게 되는 거냐고. 남편은 그 사람들이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계속 핸드폰 앱을 보고 있다가 그 말에 핸드폰을 내려놨다. 식사 준비를 마저 했다. 다 같이 모여앉아 밥을 먹었다.




남편은 케이크 박스를 식탁 위에 올렸다. 박스 투명창으로 케이크가 보인다. 제일 위에 딸기가 가득 올려져 있다. 호수는 미니. 지름이 10~13cm 되는 듯 보였다. 남편은 박스에서 케이크를 꺼냈다. 박스 위에 케이크를 올렸다. 초를 꽂았다. 케이크 초는 하나만 준다고 쓰여있었다. 한가운데에 꽂았다. 케이크를 앞에 두고 아빠, 엄마, 동생, 남편, 채니 그리고 나까지 둘러앉았다. 초에 불을 켜고 축하 노래를 불렀다.




아빠의 69번째 생일. 간암 고주파 치료를 하고, 퇴원한 다음 날이다. 작년 아빠는 간암 진단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고, 1차를 진행했다. 1차 경과는 좋다고 병원에서 이야기했고,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았다. 검진을 갈 때마다 예우가 좋다고 했다. 의사는 본인이 잘해서 그렇다며 너스레를 떨었다는 말을 엄마에게 전해 들으며 안심이 됐다. 그래도 아직 1년이 된 건 아니니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1차 항암 때 암세포가 두 군데 있었는데, 하나는 세포가 완전히 죽었고 다른 하나는 아니었다. 저번 정기검진 때, 의사는 두 개 세포 중 하나는 없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가 전화 와서 이 이야기를 하는데,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내려놓았다. 스피커폰이었던 핸드폰을 손에 들고 소파에 앉았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말문이 막혔다. 엄마도 목소리가 힘이 없었다. 나는 괜찮을 거라며 엄마를 위로했지만, 마음이 답답했다. 한숨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엄마와 전화를 끊고,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걱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란 건 알지만, 마냥 아무 생각이 없을 순 없으니까. 검사 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고 했고, 다음 주에 나온다고 하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검사 결과가 나왔다. 간암 고주파 열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바로 일정이 잡혔다. 의사는 가만히 놓아두지 말고, 선제 대응을 하자고 했단다. 그저 치료가 잘 되길 바랄 뿐이었다.

주파 열치료에 대한 안내문을 엄마가 카톡으로 보내왔다. 리플릿을 보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봤다. 치료 예후는 어떤지, 음식은 어떻게 먹는지, 생활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도 확인해 보고. 아빠가 먹어야 하는 영양제를 주문했다. 물도 이것저것 검색해 보고 택배로 시켰다. 열치료 전부터 퇴원해서 먹을 분량만큼.

입원 전날부터 퇴원할 때까지 엄마랑 매일 통화했다. 중간중간 카톡도 하고. 아빠가 궁금하니까. 그러다 아빠 생일이 퇴원 다음 날인 걸 알았다. 달력에 적어두고도 안 보였다. 열치료만 생각하느라. 생일인데 가도 되나 싶기도 하고, 어떤 상황이 우리에게 생길지 모르니까. 일정을 잡기도 뭐하고 안 잡기도 뭐하고. 그냥 상황 봐서 결정하자고만 엄마랑 이야기 나눴다.

다행히 열치료 마치고, 아빠 컨디션은 괜찮은 편이었다. 바로 식사도 하시고, 일상생활에서도 큰 무리하지 않는 정도에서는 가능하다고 했다. 퇴원 당일에 갈까 하다가 엄마랑 아빠 모두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퇴원 다음날 가기로 했다. 그날은 아빠 생일이기도 하니까.




"사랑하는 우리 아빠, 생일 축하합니다." 박수를 치며 노래가 끝났다. 아빠는 채니와 함께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채니는 케이크 불을 껐다. 마치 자기 생일인 양. 아빠에게 케이크 칼을 건넸다. 아빠는 말없이 케이크를 잘랐다. 케이크 조각을 접시에 각각 담아 한 명씩 차지했다.

새빨간 딸기가 케이크 시트에도 겹겹이 들어있다. 하얀 크림 사이사이로 붉은빛이 보인다. 나는 여전히 붉게 빛나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 암 아니야."라고 말하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케이크 속 딸기처럼 우리도 무언가에 덮여있다. 나이, 실패, 두려움, 병 등. 각자의 짐이 있다. 짐의 무게가 무거워 때로는 딸기라는 사실을 잊을 때도 있다. 그래도 딸기는 어디에 있든 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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