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넣고 싶으면 넣고, 말고 싶으면 말아. 뭐 그런 거까지 물어봐."
말해놓고 아차 싶었다. 소파에 드러누워있던 나는 얼른 일어나 남편 얼굴을 살폈다. 표정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무표정한 얼굴. 남편은 늘 무표정한 얼굴이 긴 하다. 하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괜히 힐끔힐끔 남편 있는 주방 쪽을 쳐다봤다. 남편은 밥을 짓고 있었다. 나에게 잡곡을 넣을 건지 말 건지를 물었던 것.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채니 프레뵐 시작하면 내가 밥하려고 했다고. 일하고 와서 피곤할 텐데, 뭐 하러 그것까지 신경 쓰냐고. 남편은 나를 한번 보더니, 그냥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핸드폰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채니를 어린이집 차에 태워보내놓고, 집에 돌아와 일했다. 수업이 있는 날. 만들어둔 자료 확인했다. 리허설도 했다. 멘트도 다듬고, 버벅거리는 곳은 메모도 해뒀다. 최종본으로 피피티 파일도 출력해뒀다. 흐름을 외우고 있기도 하지만, 한 번씩 기억 안 날 때 있다. 그럴 때 출력된 종이를 보면 다음 내용도 있고, 내가 메모해둔 것도 있으니 잊지 않을 수 있다. 수업 준비가 끝났다.
수업 준비 마치고 책 읽었다. 독서모임에서 읽고 있는 책, 혼자 읽는 책 순서대로 읽었다. 필사도 하고, 이것저것 내가 할 일들을 끝냈다. 청소도 했다. 쓸고 닦고, 설거지와 빨래까지 끝내고 시간을 보니 어느덧 채니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 됐다. 옷을 챙겨 입고 집 밖을 나섰다.
채니를 데리러 가기 전에 카페에 들렀다. 채니가 좋아하는 소금 빵을 사려고. 조금 늦게 가면 다 팔리고 없을 때가 많다. 다름 동네 인기 카페. 계산을 하면서 담아달라고 했더니, 사장님은 채니와 함께 오지 않은 연유를 물었다. 나는 빵을 사서 채니를 데리러 가려고 한다고 했다. 사장님은 종이봉투에 빵을 담아서 나에게 줬다. 나는 장바구니에 넣어서 채니를 데리러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채니는 어린이집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안아들라고 했다. 채니를 안아서 정류장에서부터 집 1층 현관까지 왔다. 14킬로그램 정도 되는 채니. 짐도 두 개나 들고 채니까지 안으려니 쉽지는 않았다. 채니를 안고 있던 팔이 점점 내려갔다. 채니도 그걸 느꼈는지 나에게 말했다. 더 꽉 안으라고. 나는 대답했다. 채니가 이제 몸무게가 많이 나가니까 계속 안고 있기가 무겁다고. 안 그래도 요즘 팔베개 하고 자는 통에 목부터 어깨까지 계속 통증이 있던 터. 날개 죽지까지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이내 팔이 스르륵 풀렸다. 나는 현관 앞에서 채니를 내려줬다.
채니는 내 허벅다리를 부여잡고 자기를 안으라고 울먹였다. 나는 쭈구리고 앉아서 채니와 눈을 맞추고 말했다. 팔이 너무 아파서 지금 안기가 어렵다고. 이제 엘리베이터만 타면 되니까 그냥 걸어가자고. 말을 들을 채니가 아니다. 채니는 엄마 때 엄마 미워라고 말하며, 나를 때리는 시늉을 했다. 어찌저찌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현관으로 왔다.
집 문이 열리자 채니는 현관에 주저앉았다. 나는 문 앞에 주저앉은 채니를 그대로 뒀다. 문이 닫히다가 다치면 안 되니 도어스토퍼를 내려서 문을 열어둔 채로 놔뒀다. 가지고 있던 짐을 먼저 정리했다. 채니는 그 상태로 울먹거리며 내가 밉다고 말했다. 짐을 먼저 정리하고 채니에게로 갔다. 일으켜 세워서 신발장에 있는 채니 의자에 앉혔다. 왜 엄마가 미운지 물었다. 자기를 집까지 안아서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팔이 아파서 안을 수 없었고, 채니가 이제 형님이라 몸무게가 많이 나가고, 엄마는 힘이 없고 구구절절 설명이 이어졌다. 말을 한참 하던 중에 채니는 납득이 간 건지, 꼬락서니가 풀린 건지 갑자기 나를 사랑한다며 안겼다. 나는 이때다 싶어 채니 신발을 얼른 벗기고 간식을 먹자면서 거실로 데리고 들어왔다.
3월부터 어린이집을 옮겼다. 집에 오는 시간은 이전보다 한 시간가량 빨라졌다. 빨리 집에 오는 것은 채니로서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환경이다 보니 아무래도 적응이 필요한 시기일 테지. 친구들도 모두 바뀌기도 했고. 어렴풋 채니가 칭얼대는 이유를 짐작해 보며 채니를 잘 달래보려 하지만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 그럴 거라고 머리로는 이해를 하며, 잘 받아주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콱 한대 쥐어박았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 든다. 목구멍까지 험한 말이 나오려다 내려갔다.
잠시 시선을 돌리는 것은 성공했지만, 지속되지는 않았다. 카페에서는 소금 빵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내준다. 그렇게 내주려고 빵과 칼을 들고 자르려 했다가 채니는 다시 자지러지게 울었다. 빵을 자르지 말라고. 통째로 채니에게 빵을 쥐여줬다. 식탁에 앉아서 먹으라고 의자에 앉혀주고, 나는 우유를 꺼내러 냉장고로 갔다. 컵에 우유를 따라서 줬다. 채니가 좀 진정된 거 같길래 물었다. 왜 엄마가 밉고, 엄마를 때린다고 하는지. 채니는 집에 올 때까지 엄마가 자기를 안아서 데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팔이 아파서 그랬다고 다시 설명해 줬다.
빵을 다 먹고 거실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채니는 굴절사다리차, 나는 청소차를 들고, 자동차 놀이를 했다. 한 시간 이십분가량 그렇게 놀고 있을 때 남편이 집에 왔다.
주로 남편이 집에 오면 저녁을 함께 먹는다. 오늘은 채니가 프뢰벨 수업을 해야 해서 수업이 끝나면 먹자고 남편에게 말했다. 마침 밥도 다 떨어져서 해야 하기도 했다.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나는 한숨 돌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마음이 풀어진달까. 나에게만 집중되던 채니 관심이 분산되기도 하니까. 한결 낫다. 나는 소파에 드러누웠다. 채니가 프뢰벨 수업하기 전까지 잠시 쉬고, 프뢰벨 수업을 할 때 밥을 하려고 했다.
주방에서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남편이 간식 먹겠거니 싶어 별 신경 쓰지 않았다. 나에게 뭐라고 몇 차례 질문하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몇 번 뭐라고 하길래 들어보니 밥 지을 때, 잡곡을 넣을 건지 말 건지를 묻는 거였다. 인상이 찌푸려졌다. 나는 한 마디를 툭 내뱉었고, 우리 사이에 말은 사라졌다.
채니는 프뢰벨 시간이 되어 선생님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공부방으로, 남편은 안방으로 들어갔다. 같이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대화는 없었다. 채니의 소리만 공기 중에 떠다녔다. 나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자리를 떴다. 곧 이어서 수업도 해야 했으니까. 적당한 핑계거리다. 남편이 채니와 거실에서 놀고 있는 사이 나는 수업을 진행했다.
줌을 오픈하고, 수강생에게 링크를 공유했다. 아침에 출력해둔 프린트물에 메모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었다. 딩동 소리가 났다. 수강생이 들어왔다는 알림. 수강생 근황 이야기를 했다. 글로 어떻게 쓸 수 있을지, 어떻게 관점을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수업은 잘 마쳤다. 계획했던 대로.
수업을 마치고 방 밖을 나섰다. 다시 현실의 침묵이 나를 맞았다. 채니는 자기도 수업을 하고 싶다며 나에게 매달렸고. 남편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그 둘에게 얼른 자자고 말했다. 침대에 셋이 나란히 누웠다. 채니는 이말 저말 하느라 바쁘다.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하기도 하고. 베개를 내 왼편에 놓았다가 오른편에 놓아다가 하며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남편은 벽을 바라보고 드러누웠다. 소란한 가운데, 적막이 흘렀다.
수강생이 어려운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답을 주려 노력했다. 답은 그럴듯했는지, 수강생은 고개를 끄덕였고, 낯빛이 환해졌다. 고맙다는 말도 들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했던가. 정작 내 머리는 깍지 못했다. 잡곡을 넣을지 말지를 묻는 남편의 말은 어쩌면 오늘 고생 많았지라는 서툰 위로였을 터다. 채니의 안아서 집 까지 가달라는 말은 적응하느라 힘들었다는 뜻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