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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Oct 30. 2021

취미가 백만 스무 가지 있습니다만.

누군가 나에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이가 자는 틈을 타서 책을 읽고, 책의 내용을 필사합니다.  필사 노트 한편엔 책 표지를 베껴 그리기도 합니다.


적막한 것이 싫지만 아이가 깨면 안 되니 한쪽 귀에만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습니다.  요즘엔 k-pop에 빠져있습니다. 오늘은 최근 컴백한 2pm의 신곡을 듣습니다.  


노래에 집중하다 보니 흥이 올라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음악에 몸을 맡겨봅니다. 춤을 추다 보니 곤히 자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잠든 시간의 제 모습입니다. 저 모습 안에 들어있는 저는 취미 생활 중입니다. 읽어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 모든 것들은 저의 취미생활입니다. 독서, 필사, 그림, 음악 감상, 댄스, 사진 촬영.



모든 게 다 취미냐고요? 네. 그렇습니다. 사실 반도 적지 못 했습니다. 저는 취미가 백만 스무 가지는 족히 됩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저기에 포함되지 못 한 나의 취미들을 열거하자면 네일아트,  뜨개질, 베이킹, 드라마 몰아보기, 영화감상, 글쓰기, 수시로 주인공이 바뀌는 덕질, 기타 등등 의 수많은 취미 보유자이다. 이 많은 취미들을 정말 다 하고, 잘하느냐 하면 사실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취미이다. 잘하는 것이라면 특기가 되고 그것으로 수입도 생기겠지만 그렇지 않기에 난 그냥 수많은 취미만 가지고 있다. 잘하고 싶어서 연습도 하고 해 보지만 끈질기지 못한 탓인지 좀처럼 특기가 되질 못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특기가 되지 못한 취미들은 누군가에게 대답하기가 부끄러워진다. 상대방의 눈빛에 읽히는 기대감이 사뭇 부담스럽다. 잘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실력이 밝혀지면 실망할 것 같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양손을 저어가며 스스로 애써 부연 설명을 한다. 잘하진 못한다고, 그냥 취미로 가끔 할 뿐이라고.



그러다 보니 사실 누군가 취미를 물어보면 딱 부러지게 대답을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기껏 해봐야 실력의 상중하가 없는 독서 정도 일까? 하지만 그것마저 1년에 몇 권의 책을 읽는지, 어떤 종류의 책을 읽는지 등등 판단을 위한 질문들이 이어질까 얼버무리게 된다.



취미 :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특기 : 남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기술이나 기능.



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 떡하니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만 취미와 특기의 뜻을 혼동하는 것 같다. 즐기는 것일 뿐인 것들을 잘하지 못한다고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숨기고 있다.  그리고 숨길 거면 끝까지 숨길 것이지 야금야금 sns에 업로드 중인 나 자신이 가끔 스스로도 부끄럽다. 그것도 내가 한 것 중 가장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만 올리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해 보일 때도 있다. 즐기기 위해 스스로 기꺼이 시간을 내었으니 즐기기만 하면 되는데 난 또 왜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제대로 즐기지를 못 하고 있는 걸까.



실제로 여러 번 하다가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는 것 같으면 '난 재능이 없나 봐' 라며 금세 흥미를 잃어버린다. 사실 실력이 늘지 않은 건 꾸준하지 않아서이다. 생각날 때마다 재미로 꺼내서 해 보고 있으니 실력이 늘 수가 없다. 그리고 백만 스무 가 지나 되다 보니 1년에 한 번도 안 꺼내보는 취미 생활도 있다.  실제로 몇 년 전에 큰 맘먹고 산 고가의 dslr 카메라는 작년  여름에 꺼내고 한 번 도 안 꺼낸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게 즐기고 싶을 때 꺼내서 하는 게 취미인데 난 왜 자꾸 취미가 특기이길 바라는 걸까. 아 물론 내가 재능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취미 활동들에 재능이 다 있을 수가 없다. 백만 스무 가지나 되니 말이다.



취미를 취미로만 즐긴다면 좀 더 내 삶이 재밌어질 텐데. 란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많은 취미를 가진 만큼 좀 더 삶을 다양하고 재밌게 즐길 요건이 충분한데 그러지 못하는 건 순전히 나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 조심하는 부분은 타인의 취미를 특기로 보지 않기이다. 그런 실수만큼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한다. 취미에 실력을 요구하는 피곤함은 나 스스로 만으로도 족하다. 타인의 취미 생활을 응원하고 존중해 줌으로써 내 취미 생활도 스스로 응원한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 취미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주저 없이 말하려고 한다.



"전 취미가 백만 스무 가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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