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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Nov 12. 2021

노는 게 제일 좋아.

20대 중반, 어느 날 집에 돌아와 이미 잠든 동생 옆에 누워, 동생을 끌어안으 동생 귀에 대고 말했다.

"동생아, 언니는... 노는 게 너~무 좋아."

이 사건은 동생과 나의 지인들에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려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노는 거라 하면 정확히 가무(歌舞)를 뜻한다. 노래와 춤이 함께 있는 놀이.


나는 이 놀이에 꽤 진심인 편이다. 기분이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나, 공적이거나 사적이거나 이 놀이가 포함되어 있다면 언제든 신이 난다. 이 놀이를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다.


먼저 가장 고품질로는 노래방에서 즐기는 방법이 있다.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MR, 적당히 에코가 있는 마이크, 그리고 완벽한 방음시설. 이곳은 특히 여럿이 함께 즐기며 놀 수 있는 공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취기가 적당히 있을 때 모임의 마지막으로 가는 곳이라 알고 있지만, 사실 이곳은 정신이 또렷할 때 이 놀이를 가장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취기가 있으면 흥은 좀 더 많이 오를지 모르지만, 목 상태가 고르지 않을 수 있고 다음날 목이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취하지 않고도 취한 것만큼의 분위기로 놀 수 있으며, 그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기에 나에겐 가장 고품질로 놀 수 있는 방법이 되겠다.


다음으로는 집에서 즐기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집에 누군가 있을 때와 혼자 있을 때로 나뉘는데 누군가 집에 있을 때는 조금 제약이 따른다. 이 '가무(歌舞)'라는 것이 나에겐 놀이 일 수 있으나 이것을 싫어하는 사람에겐 소음이고 꼴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함께 있을 때는 동의를 구해서 같이 듣고, 부르고 춤추고 놀아본다. 날씨에 어울리는 노래일 경우는 같이 즐기기 좋은 기회가 된다. 그게 안될 때는 이어폰을 꽂고 조용히 혼자 논다. 방 안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입틀막으로 노래를 부르고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인다. 이때 층간 소음에 주의하자.


마지막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즐기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난이도가 좀 있다. 이것 또한 함께 해줄 친구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변의 시선과 친구들의 핀잔을 버텨야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사실 계획적으로 놀기보다는 내가 예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놀이가 이루어진다. 이어폰을 꽂고 길을 걷고 있는데 견딜 수 없이 놀고 싶은 음악이 나온다거나, 길가나 우연히 들어간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놀이판을 깔아주는 경우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어폰을 꽂고 걸을 때는 나도 길을 걷고 있을 때라 자제가 되지만, 갑자기 음악이 흘러나올 땐 내가 어찌할 수 없이 알아서 몸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땐 친구들이 지켜보다가 조금 과하다 싶어질 때 살포시 나의 어깨를 잡아 준다거나, 자리를 옮겨주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거나, 혹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영상이 찍히는 것을 방지해준다.


이렇게나 진심인 이 놀이를 요즘은 코로나와 육아로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고 있다.  특히나 제일 고품질로 즐길 수 있는 노래방은 오랫동안 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식당에서 혼자 고기는 못 구워 먹어도 혼자 노래방은 갈 수 있는 프로 혼자러인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전혀 못하고 있다. 외출을 하지 않으니 마지막 방법도 할 수 없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아이가 잠들었을 때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입틀막으로 즐기는 방법뿐. 하지만 이 방법은 늘 뭔가 1프로 부족하다.


놀이라는 게 본래 자신이 좋아하는 놀이를 하고 나면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되기 마련이라, 오랫동안 나의 놀이를 즐기지 못하니 좀처럼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노는 게 제일 좋은 나의 정신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가 있는가.

특히나 육아엔 건강한 정신 상태가 필수 조건이다.


결국 나는 다른 놀이를 찾아 나섰다. 뭘 하면 나에게 새로운 놀이로 다가올까. 이것저것 찾아보고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좀처럼 지금의 코로나 시대에, 특히나 갓난아이 육아 중인 나에게 놀이로 다가올만한 것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나에게 맞는 신나는 놀이를 하나 찾았다. 그것은 바로 야밤에 음악 들으며 북맥, 혹은 맥 필사하기. 즉 맥주 마시며 책 읽기, 맥주 마시며 책 필사하기이다.

아이가 잠들고 새끈 새끈 소리가 들리면 냉장고에서 차가워진 맥주를 (사실은 주로 논알코올 맥주를 마신다. 아쉽지만 갓난아이 육아에 알코올을 자주 마시긴 힘들다.) 꺼낸다. 그리고 숨겨둔 과자를 조금 가져온다. 그리고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거나, 다 읽은 책의 내용을 필사한다. 이렇게 1시간 혹은 2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하루 동안 피곤했던 마음이 풀리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심지어 흥까지 오른다. 이어폰에서 신나는 템포의 음악이라도 나온다면 몸이 절로 움직인다.

자리를 정리하고 책과 노트를 덮고 잠들기 위해 자리에 누우면 노래방을 다녀온 날과 비슷한 기분이 된다. 몸안에 있던 스트레스와 안 좋은 기분의 것들이 모두 밖으로 빠져나가고 내 안에는 오롯이 좋은 기운들만 남아있다. 수면이 한, 두 시간 부족해도 다음날 좀 더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역시 난 노는 게 제일 좋다.


노는 게 좋은 내가 한동안 놀 수 없어 속상했는데, 놀이가 별거 아니더라는 걸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신나게 즐기니 그것이 그냥 놀이가 되었다. 살아가면서 나만의 놀이가 하나쯤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아무 생각 없이 몰두해서 즐길 수 있는 놀이는 끝이 나고 나면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들이 어느새 풀리고 사라지고, 놀이할 때 느꼈던 좋은 것들만 들어앉는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더 좋을 것이다. 좋은 기운은 더해질 때 시너지 효과가 생겨 나에게 두배 이상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놀이할 날들도 기다려지고, 그날이 되면 여우를 기다리는 어린 왕자처럼 몇 시간 전부터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놀이를 하나씩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끔은 서로의 놀이를 공유하고, 교환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서로의 좋은 기운을 함께 가지면 좋겠다. 그게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라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랑 같이 음악 들으며, 맥주 마시고 책 읽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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