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행복과 집착 사이

오래된 행복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는 시간

by 보라
10년 묵은 옷장에서 떠오른 지난 행복과 집착.
버려지지 않고, 이제는 놓아준 나의 이야기.


그동안 적잖은 무게를 품고 서 있던 옷걸이.

마침내 10년 묵은 옷들을 꺼내 정리했다.


드레스룸에 옷이 가득 걸려 있는 모습이 든든했지만,

어느 순간 이미

비슷한 디자인과 재질의 옷이 충분히 있음에도

계속 같은 종류의 옷을 사 오던 나를 발견했다.


저 구석에 처박힌 옷들은

기억에서도 밀려나 있었다.


아무의 손길도,

한 줄기 빛도 닿지 못한 채로.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구겨진 옷들이

마치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옷을 샀던 기억이 파도처럼 떠올랐다.

미국의 쇼핑몰, 아웃렛, 백화점.

주말마다 나들이 삼아 돌아다니며

눈앞의 옷을 한 벌, 한 벌 살피던 나.


천천히 만지고, 입어보고, 내려놓고, 다시 담으며

작은 디테일까지 까다롭게 살폈다.


쇼핑백 가득 한 꾸러미를 안고 나오던 길,

거리의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스치고

발걸음은 가볍게 뛰듯이 나아갔다.


집에 돌아와 옷을 펼치며

미소를 지었던 순간까지,

내 행복감은 옷 안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행복감은

지금, 빛 한 줌 닿지 않는 저 구석에서

영원히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옷장 속 신세였다.


새 옷을 걸 자리가 없으니

예전 행복감마저 밀려나는 듯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는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기부센터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옷을 기부봉투에 담으며,

좋은 브랜드의 멋진 옷들이 꽤 많음을 새삼 느꼈다.


옷이 내게 왔던 순간의 풍경, 냄새, 웃음, 설렘까지

밀물처럼 떠올랐다.


기대 가득 안고 돌아다니던 쇼핑몰,

거울 앞에서 장난스럽게 포즈를 취하던 나,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웃으며 나눈 작은 행복까지.


하나씩 봉투에 담으며,

내 행복한 추억 또한

새 주인에게 함께 전달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마음 한편이 한층 가벼워졌다.


한결 비워진 옷장을 바라보니

내 곁에 있어도 행복하지 못했던

오랜 집착들을 놓아준 듯한 시원함이 느껴졌다.


곧 새 옷으로 채워질 옷장이지만,

오랜 집착을 내려놓은 나는

스스로가 조금 기특했다.


마음 한 켠에서는

새로운 나를 위한 공간이 마련된 듯,

설렘과 기대가 살짝 몸을 스친다.


옷을 놓아준 만큼,

내 마음에도 새 바람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