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레인 포레스트, 당신 참...

by 보라

당신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시간,

눈부신 햇살은 서서히 부드러워졌고
야리야리한 빛이 스며든
그대 모습은 더없이 아름다웠어.

그날 기억해?

유황 냄새가 폴폴 나던
솔덕 온천 리조트와 작별하고,
당신에게 가기 위해
오래 달리고 또 달렸는데
아직도 12.5마일이나 남아 있었어.






지구 위에 단 세 곳만 존재한다는
희귀한 온대 우림 지대,
호 레인 포레스트(Hoh Rain Forest).

당신은
올림픽 국립공원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린 숲이야.






길의 양편으로
뾰족뾰족한 침엽수와
둥글둥글한 활엽수가
뒤섞여 서 있어.

신기한 풍경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는 순간,


어?

어느새 또 다른 수종으로 바뀌어 있어.
길을 향해 누운 나무도 보여.






기울어진 나무와
꼿꼿이 선 나무들이 뒤섞여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울창해.

당신의 여운이 너무 짙어서
부드러운 햇살조차
쉽게 들어오지 못하나 봐.

당신, 참 대단해.






이번엔 나무 군단인가 봐.

쭉쭉 하늘로 솟은
그대의 몸통은
굳은 절개를 지닌
선비 같아.






둥글게 모여
나를 내려다보는 모습은
마치 든든한 울타리처럼,

"괜찮아, 내가 지켜줄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

당신, 참 따뜻해.

아직 그대의 중심에도
다다르지 못한 길.

그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나는 그대 주변에 머물러 있어.

침엽수림과 활엽수림이
뒤섞인 길을 지나며
희귀한 온대 우림을
마주할 생각에
가슴이 뛰었어.

당신, 참 설레게 해.

싱그러운 숲 사이를
조금 더 지나
이제 우리가 만날 시간이야.






엘크를 보내주었네.

첫 만남을
인상 깊게 하고 싶어서
마중을 보낸 것 같아.

그런데 내 마음은
엘크들의 식사 시간에
불쑥 들어온 것 같아
괜히 미안해져.

방해하지 말아야지.

최대한 조용히, 조용히.

둥근 엉덩이를 내보인 채
풀을 뜯는 모습이
참 귀여워.

느릿느릿 움직이는
7월의 태양 덕분에
늦은 시간이었지만
당신을 만나러 올 수 있었어.

오래 머물 수는 없어도
함께하는 이 시간,
정말 소중해.






그대 곁에
조금 더 다가가 볼게.

그대 곁에 있는 나에게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어.

그저
경외와
사랑과
신성함뿐이야.

풍부하게 내리는 비 덕분에
겨울에도 성장을 멈추지 않는
굵고 큰 몸.

활엽수와 침엽수
모두를 품는
넓은 공간.






건기 동안
수분 증발을 막아주는
초록 이끼가
줄기와 가지를 따라
온몸을 뒤덮고 있어.

당신, 참 놀라워.

여기가
아마존인지,
하와이인지,
온대 숲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돼.

원시림의
압도적인 초록빛과
싱그러운 내음,
해 질 녘의 부드러운 빛은
당신을 더 몽환적으로 만들어.

또 다른 생명의
바탕이 되어주는
그대의 세계.

낮은 곳은 낮은 곳대로,
높은 곳은 높은 곳대로,
각자의 조건에 맞게
삶을 허락하는 아량.

당신, 참 너그러워.

굳게 뿌리내린 이 땅 위에서
백 년, 만 년
푸르고 울창했으면 해.

설령 스러진다 해도
그 뜻만은
이어졌으면 해.






어느새
그대에게 스며든 여광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엘크가 식사를 마칠 동안
그대 품에 머물렀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꿈처럼 깊었어.

지금 이 글을 쓰며
그날의 감정을
다시 꺼내 보니
가슴이 뜨거워져.

아마도
그때의 나는
아주 행복했었나 봐.

너무 빨리 헤어졌고
아쉬움도 남았지만,
그대라는 존재는
내 마음속에
감동으로 남아 있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어.

당신처럼
설레고,
놀랍고,
벅차고,
따뜻하고,
신비롭고,
너그러운 존재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