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교회를 다녀와 점심을 먹을 때쯤이면,
우리 집 거실엔 으레 짜인 각본처럼
'전국노래자랑'의 전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짠짜라 짠짠~~"
경쾌한 트로트 리듬은 나른한 일요일 오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우리 집만의 전주곡이었다.
그 시절 일요일 밥상은 평일과는 결이 달랐다.
갓 지은 밥과 반찬 대신, 냉면이나 칼국수, 수제비처럼
손맛이 들어간 '특별한 한 그릇'이 올랐다.
특히 여름이면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집 앞 슈퍼마켓에 들러 냉면 꾸러미를 사는 게 일과였다.
부엌에서 면 삶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아빠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자연스럽게 채널권을 쥐셨다.
내 의지로 선택한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특별히 거부할 일도, 피할 일도 없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밥상 위엔 취향이 극명하게 갈린 그릇들이 놓였다.
나와 아빠 앞에는 새콤달콤한 양념의 비빔냉면이,
엄마와 동생들 앞에는 보기만 해도 이가 시린 육수의
물냉면이 놓였다.
우리가 젓가락을 바쁘게 움직일 때면,
우리 집 강아지 몽실이도
마루 끝에 발을 올리고 동참했다.
매운 양념 때문에 어차피 먹지도 못할 거면서,
몽실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세차게 꼬리를 흔들며 한 입만 달라는 듯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 곁에서 TV 속 화면은
늘 흥에 겨운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모습으로 가득 찼다.
고(故) 송해 선생님의 "전국~ 노래자랑!"이라고
힘차게 외치는 소리,
땀을 흘리며 열창하는 출연자들과
그들을 향한 소란스럽고도 정겨운 환호가
매콤한 냉면의 맛과 섞여
우리 집 일요일의 분위기를 완성하곤 했다.
문득 다시 만나고픈 1990년대 초반 그날의 풍경.
이제는 다시 들을 수 없는 송해 선생님의 목소리와
무지개다리를 건넌 몽실이의 꼬리짓이 그립다.
하지만 그 시절
우리 집 거실을 채웠던 여름의 냄새는 여전히 생생하다.
리모컨을 쥔 아빠의 뒷모습,
매콤한 비빔냉면 한 그릇,
시끌벅적한 노랫소리와
거실 가득 울려 퍼지던 활기찬 전주곡,
그리고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빈둥거리던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의 온도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