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흘려보낸 안부들

by 보라


언젠가부터 나는 여행지마다 작은 흔적을 남기고

돌아오는 버릇이 생겼다.

꼼꼼히 챙긴다고 생각했지만,

여행을 즐기고 싶은 마음 때문에,

때때로 소중한 것들을 놓치는 일이 생긴다.


쿱(COOP) 비닐봉투 안에

장갑이 들어 있는 줄도 모르고,

체르마트 마을 골목 어귀에서

군것질거리 쓰레기와 함께

봉투를 돌돌 말아 버린 날도 있었다.


던지고 돌아서던 순간,

손끝에 스치던 찬바람.

그제야 깨달았지만

장갑은 이미 나의 기억에서조차

스르르 흘러나간 뒤였다.


취리히 캠핑장 샤워실,

아끼던 수건을 두고 나온 날도 있었다.

젖은 수건은 철제 걸이에 매달린 채

빛과 바람 속에서 한동안 다시 마를 테고,

나는 저녁노을 속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영국 호텔 침대 위,

겨울마다 품에 안고 지내던 보온 물주머니를

이불속에 가지런히 덮어 두고 나온 날도 있었다.

따뜻했던 그 친구는 침대 위에서 잠시 머물다

새벽 햇살과 함께, 나를 떠났다.


하나씩 흘려보내는 일은 이제

나만의 여행 공식이 되어버렸다.


정든 물건과의 이별은 속을 쓰리게 하고,

그 아쉬움과 슬픔은

한동안 마음 한켠에 머문다.


소중한 물건들은 이미 내 품을 떠나

스위스의 골목과 영국의 호텔,

그 밖의 모든 여행지에서

쓰레기장을 헤매거나 새 주인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을 한다.


그 생각 하나로,

언젠가 그곳으로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생긴다.


이번 여행에도 나는

익숙한 물건 몇 개를 남겨두고

새로운 물건을 사서 품에 안았다.

낯선 물건이 건네는 설렘과

익숙한 물건의 부재가 남긴 아쉬움이

한데 섞여 있다.


세상의 모든 만남과 이별은

사람도, 동물도, 장소도,

심지어 물건마저도

우리 곁에서 함께 흐른다.


흘려보낸 것들과의 이별은 아프지만,

그 기억은 떠날 이유가 되고,

나는 다시 길 위에 선다.


아픔 속에도 남은 기대와 설렘을 품고,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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