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주가 듀스(DEUX)로 확장되던 날

by 보라

​1990년대 초,

나의 세상은 오직 한 사람을 중심으로 자전하고 있었다.


서태지.

고등학교 시절 진로 고민으로 밤잠을 설치던

나를 일으켜 세운 건 그의 목소리였고,

그가 선사하는 음악적 파격은

내 사춘기의 유일한 구원 지점이었다.


'세상에 그를 뛰어넘을 자는 없다'고 굳게 믿으며,

힙합에 빠진 남동생들이 이현도의 이름을 외치고

청소 바지(힙합 바지)를 끌고 다닐 때도

나는 코방귀를 뀌곤 했다.

내게 듀스는 그저

동생들의 소란스러운 취향일 뿐이었다.


하지만 견고했던 나의 취향이 한순간에 무너진 건,

2000년 6월의 '어느 멋진 토요일'이었다.


​소개팅으로 만난 그는

내가 미처 예상치 못한 결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좋아하는 가수로

박정현, 이은미, 그리고 '듀스'를 꼽았을 때,

내 안에서는 묘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었다.


박정현에게는 이유 모를 질투가 났고,

이은미의 노래는 그의 감성을 이해하기 위해

수십 번을 반복해 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그토록 외면했던 듀스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다는 맹목적인 열망,

그것이 사랑의 힘이었을까.


이어폰 너머로 흐르는

'나를 돌아봐'와 '여름 안에서'를 들으며

나는 뒤늦은 충격에 빠졌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록과 랩, 댄스를 결합한 종합 예술을 보여줬다면,

듀스는 한국에 '정통 힙합'과 '뉴잭스윙'의 정수를

이식한 선구자였다.


​이현도의 천재적인 프로듀싱 능력은

단순히 리듬감을 넘어 치밀한 음악적 설계를 보여주었고,

김성재의 압도적인 스타일과 아우라는

지금 봐도 시대를 앞서 있었다.


동생들이 왜 그토록 열광했는지,

왜 그들이 '남자들이 더 사랑하는 가수'였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시작된 탐구였지만,

결국 나는 듀스라는 거대한 음악적 섬에

스스로 정착해 버렸다.


​2026년의 오늘 밤,

우연히 흘러나온 '나를 돌아봐'의 강렬한 비트가

다시금 나를 그 시절로 데려다 놓는다.


90년대는 가요의 황금기라는 화려한 이름으로 남았지만,

내게는 조금 더 특별한 의미로 기억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타고 흘러와,

닫혀있던 나의 세계를 비로소 확장해 주었던

그 찬란했던 청춘의 시기로 말이다.


​노래 마디마디마다 묻어있는

24살의 서툰 그리움과, 토요일 오후의 설렘.

이제는 고인이 된 김성재의 모습과

그 시절 나의 사랑이 겹쳐 보이며 코끝이 찡해진다.


누군가를 지독히 좋아했기에 가능했던

나의 '듀스 입덕기'는,

이제 내 인생의 가장 찬란했던 한 페이지로 남았다.


작가의 이전글500원이 3,594원이 되는 나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