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곤두박질친 3월 초의 주말,
계절을 시샘하듯 몰아친 추위를 뚫고
산행을 위해 집을 나섰다.
전철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멈춰 선 정류장.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벤치마다 스며 있는 열선 덕분에
잠시나마 아늑한 온기를 빌려본다.
마치 누군가 등 뒤에서
가만히 덮어준 담요 같다.
그 따스한 자리 곁으로
한 노부부가 나란히 앉으셨다.
시장을 다녀오신 듯
손에는 까만 비닐봉지가 여럿 들려 있었다.
할머니는 무심한 듯 다정하게
할아버지를 먼저 자리에 앉히고는
옆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듯 몸을 조금씩 옮겨
당신의 자리를 마련하셨다.
그러고는 할아버지 목에 둘러진 목도리를
한 번 더 정성스레 추켜세워 주셨다.
할아버지는 별다른 말이 없으셨지만,
할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집에 가면 무엇을 해 먹을지
조곤조곤 이야기를 건네고 계셨다.
어디에서나 볼 법한
우리네 노부부의 모습.
그런데 왜 그 평범한 장면이
자꾸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지.
우리 엄마도
저 자리에 계셨어야 했다.
주말 아침,
아빠와 나란히 시장에 다녀오며
자식 걱정이며 사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셨어야 했다.
가끔은 옅은 한숨을 섞고
또 가끔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일상의 길목을 지키고 계셨어야 했다.
손주들 먹일 간식거리가 든 비닐봉지를 꼭 쥐고
빈자리가 나면
아빠를 먼저 앉히셨을 것이다.
"몇 번 버스가 오느냐"고 곁 사람에게 물어보며
"맞게 왔네." 하고
작게 안도하는 표정도 지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엄마는 이 풍경 속에 없다.
버스가 도착했고
나는 그 장면을 뒤에 두고 올라탔다.
창가에 앉아
조금 전 정류장을 떠올리다 보니
차창이 흐릿해졌다.
밖에 안개가 낀 줄 알았는데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꾸만 아빠에게
원망의 화살을 쏘고 싶어진다.
조금만 더 다정했더라면,
당신의 이기심을 한 뼘만 내려놓았더라면.
그랬다면 지금쯤 엄마는
저 따뜻한 벤치 위에 앉아
나와 함께
봄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