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TV 속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를 아직도 기억한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 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나에게 '빨강머리 앤'은
처음 만난 만화 속 소녀였다.
그땐 끊임없이 재잘대는 앤이
조금은 귀찮게 느껴졌고,
무뚝뚝한 마릴라 아주머니는 무섭기까지 했으며,
말수가 적은 매튜 아저씨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단지 만화 속 한 장면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우연히 다시 만난 『초록 지붕 집의 앤』은
아이 때와는 완전히 다른 빛으로 다가왔다.
그저 어린 시절 추억을 꺼내려는 마음으로
펼친 책이었지만,
앤은 더 이상 단순한 만화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녀는 내게 깊은 위로이자,
삶을 바라보는 작은 철학이 되어 있었다.
잔잔히 이어지는 서정적인 풍경,
느리게 흘러가는 이야기,
그리고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니
더 깊이 다가오는 앤의 말들.
전 늘 아침이 좋아요.
나머지 하루가 멋진 모험이 될 수 있으니까요.
아침에는 무엇이든 기대하고, 상상할 수 있잖아요.
길가에 노란 나뭇잎들이 지붕처럼 늘어져 있었고,
공기는 신선하고 상쾌한 냄새로 가득했다.
앤은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요.
살아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해요.
정말 재미있는 세상이잖아요.
그토록 재잘대던 앤은
그저 말이 많은 소녀가 아니었다.
세상과 삶에 대한 깊은 사랑과 호기심을 품은 존재였다.
이제는 언젠가 꼭 원서를 펼쳐
빛나는 이야기의 '첫 문장'을
내 목소리로 읽어보고 싶다.
숨 가쁘게 달려온 나에게 앤은 어떤 인사를 건넬까.
그녀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더 깊이 마주하고 싶다는 작은 꿈을
오늘도 소중히 간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