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1. 다시 그리기 길로
대구에 가면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 있다.
故 김광석이 태어난 대구시 중구 대봉동에
그의 삶과 음악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골목이다.
방천 시장을 따라 이어진 약 350미터.
나는 그 길을 천천히 걸었다.
영하로 떨어진 날씨는 차가웠지만,
골목 안에는 그의 음악이 잔잔히 울려 퍼졌다.
벽화 속 김광석의 얼굴은
웃고 있기도 하고, 생각에 잠겨 있기도 했다.
손글씨로 적힌 노랫말들이
벽을 따라 흘러나와
마치 그가 내 앞에서 속삭이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
벽돌 담벼락과 오래된 간판 사이로
낡은 전봇대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고,
작은 창문마다 햇살이 스며드는 모습은
고요한 새벽 골목을 한층 따뜻하게 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길의 끝을 바라보았다.
2. 새벽과 골목
해가 뜬 지 한 시간 남짓.
일출 전 차가운 새벽바람이
골목 틈새마다 남아 있었다.
텅 빈 골목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를 음악이 부드럽게 채우고 있었다.
낡은 시멘트 바닥 위로 발자국이 남고,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라디오 소리가
마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듯했다.
그는 흔한 대중음악가가 아니었다.
한 시대의 음유시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3. 어린 시절의 음악
1988년 가을,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일찍 찾아온 사춘기에
감수성이 한창 폭발할 무렵이었다.
친구들이 소방차와 박남정에 열광할 때,
나는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오미희의 가요 산책>이라는 프로그램에
푹 빠져,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녹음하고 반복했다.
이문세, 이치현과 벗님들,
변진섭, 최호섭, 이승철, 이선희,
그리고 김광석의 목소리가
테이프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동물원과 김광석을 처음 접한 것도
그렇게 라디오를 통해서였다.
“거리에 가로등 불이 하나둘씩 켜지고
검붉은 노을 너머 또 하루가 저물 땐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라디오 스피커를 통해 흐르는 그의 목소리는
얼마나 구슬프게 들리던지,
나는 이내 눈물이 또르르 떨어지며
친구에게 긴 편지를 쓰곤 했다.
4. 벽화 속에서 만나다
아련한 기억 속의 김광석은
시대와 삶을 노래하는 음유시인이었고,
우리의 감성을 흔들며
많은 위안을 남기고 떠났다.
그의 이른 죽음은
감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충격이었다.
골목에 들어서자,
벽화에는 그의 노랫말과 그림이 펼쳐져 있었다.
길을 따라 그려진 그림 하나하나가
마치 짧은 에세이를 읽는 듯했다.
벽화 속 장면 하나를 떠올려 보자.
그가 기타를 들고 앉아 있는 모습,
작은 창가에 걸린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그리고 담벼락을 따라 적힌 그의 노랫말.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길을 걷는 동안,
나는 그의 삶과 생각을 떠올렸다.
여기와 저기,
이쪽과 저쪽,
닿지 못하는 평행을 견디며 살아갔을 그가 보였고,
남다른 감수성 때문에
더 외로웠을 그가 느껴졌다.
길의 끝에 다다르자,
벽화와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내 마음속에 잔잔한 울림을 남겼다.
5. 오늘, 그를 그리며
오늘, 나는 그를 그리며
그 시간 속으로 돌아간다.
참 많이 보고 싶다.
골목을 떠나면서도,
벽화 속 그의 미소와 목소리는
내 마음 한 켠에 남아
지금 이 순간에도 잔잔히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