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 그리고 눈

by 보라

어린 시절,

나는 겨울을 무척 좋아했다.

겨울에만 만날 수 있는 설탕 같은 눈 때문이었다.


회색빛 혹은 까만 하늘에서 뿌려진 눈가루는

우리 집 마당을 하얗게 덮었고,

밤새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고,

서로에게 던지며 눈싸움을 하던 순간들은

겨울이 주는 최고의 놀잇감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눈은 더 이상 반갑지 않았다.

아마 학교나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였을 것이다.


눈은 교통을 마비시키고,

길 위를 위험한 빙판으로 만들었으며,

하얀 빛깔 대신

먼지와 섞여 지저분한 색으로 남았다.


밤새 조용히 내린 눈은

아침 출근길을 망치는 도둑 같았다.


그런데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나는 다시 눈을 기다리게 되었다.


황갈색으로 메마른 겨울산을

가장 아름답게 단장하는 방법은

오직 하늘에서 내리는

마법 같은 눈가루뿐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짬을 내어 뒷산으로 향했다.

동네 근린공원 들머리에서 시작해,

5봉을 지나 1봉에 올랐고,

다시 초등학교 쪽으로 내려와

원점으로 돌아오는 길.


걷는 동안 드문드문 흩날리던 눈발은

점점 굵어지며 바닥에 쌓여 갔다.






하늘은 회색 구름에 둘러싸여 있었고,

황토색 나무 계단은 어느새

밀가루를 뿌린 듯 하얗게 덮였다.


얼굴에 차갑게 부딪치던 눈가루 하나하나는

이제 굵은소금처럼 풍성하게 내리고 있다.







황량한 겨울산을 예쁘게 단장해 주는 함박눈.

메마른 산이 기다려온 귀한 선물.


산을 사랑하는 이들의 바람처럼

소복이 쌓여 겨울산의 묘미를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