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by 보라
코스모스와 단풍 사이,
수술실 앞 대기실에서 느낀 긴장과 작은 위로의 기록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갑니다.


공기 속에 스며드는 가을의 흔적이

조금씩 짙어지던 날,

엄마가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한두 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수술은

다섯 시간을 훌쩍 넘겼고,

회복실에서 세 시간을 더 보내는 동안,


수술실 앞 대기실에서

네모난 모니터만 바라보는 아빠의 옆모습은

말없이 초조하고,

무엇보다 외로워 보였습니다.





수술실로 들어간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호명되는 보호자의 이름.


그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숨 막히는 불안이 전염되듯

저도 덩달아 긴장했습니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삶을 대하는 방식을 달리하게 만듭니다.


이곳과 저곳의 거리 차이는 고작 몇 백 미터지만,

그 사이에 놓인 눈빛은

분명히 다르게 빛납니다.


벽에 붙은,

단지 이름 몇 개 나열된 모니터를

운명줄인 양 바라보며

속으로 조그맣게 중얼거렸습니다.





멀리서 빈다
나태주 詩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가을이니까,

떨굴 겁니다.


살짝 스쳐가는 바람에도,

스스로의 때가 왔다 여긴 잎들은

조용히, 조심스레, 술술 떨어질 겁니다.


단풍잎이며 은행잎이며

회색 바닥에 무늬를 남기다

거리마다 어지럽게 흩어지겠지요.




수술은 끝났고,

긴 초조의 시간도 지나갔습니다.


병원 휴게실 한구석에 앉아

나태주 시인의 시를

입안에 넣고 조용히 오물거려 봅니다.


그제야 비로소

나도 조금은 여유를 되찾고 있구나,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