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되지 않는 것

by 보라
올해 초,
버티는 법을 다시 배우던 시기에 쓴 글입니다.


살면서 힘들어질 때,

어떻게 하나요?


도움을 구하나요?

묵묵히 참아내며 버티시나요?

아니면 스스로 해결하려고 나서나요?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요?


글?

책?

산?

술?

사람?

여행?

수다?


무엇으로, 어떻게 스스로를 견디시나요?


요즘 저는 직장에서 힘든 시간을 겪고 있습니다.

가족과 동료들이 곁에 있어주고,

그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위안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할 주체는 '나'이고,

감당해야 할 몫도 온전히 '나'의 몫이기에

슬픔에 잠기고,

때론 그 안에 파묻히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한 동료가 해준 말이

유난히 가슴 깊이 남았습니다.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말은 마치 어둠 속에서 반짝인

작은 불빛 같았습니다.


뼛속까지 시린 고통,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같은 현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

극단적인 해결책만 남은 상황,

에너지가 다 소진된 몸과 마음,

아무리 봄날 같은 무언가를 갖다 놓아도

느낄 수 없는 무감각한 마음,

그 모든 순간에도

매몰되지 않는 것.


내가 처한 고통을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도,

매몰되지 않는 것.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문장이었습니다.


그 말을 곱씹다가 문득,

예전에 읽었던 『어린 왕자』 속

'술고래의 별'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어린 왕자가 여행 도중 도착한 별에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술을 마시고 있었지요.

어린 왕자가 물었습니다.


"왜 술을 마시나요?"


그는 대답합니다.


"잊기 위해서지."


"무엇을 잊으려고요?"


"수치스러운 걸."


"무엇이 수치스러운데요?"


그는 고개를 떨군 채 말합니다.


"술 마시는 게 수치스럽거든."


그 말에 어린 왕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결국 그 별을 떠나며 중얼거렸습니다.


"어른들은 확실히 이상한 것 같아."


그 '술고래'를 떠올리며 생각했습니다.


혹시 나도,

내 슬픔에 매몰된 채

그 안을 맴돌고 있는 건 아닐까.


매몰되지 않는 것.


결국, 그 다짐이 나를 다시 일으킵니다.

슬픔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슬픔 속에 '빠져들지 않겠다'는 선택을

스스로 했을 뿐입니다.


언젠가 내가 내 발로 걸어 나올 수 있을 때,

기다리던 봄은

언제나 그렇듯 조용히 와 있을 테니까요.


지금 제게 필요한 건,

매몰되지 않겠다는

단 하나의 다짐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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