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가던 사람도, 뒤에 있던 사람도

시간을 통과한 사람들

by 보라

지하철역 한 귀퉁이에 앉아 순간이 사라질까 봐

서둘러 펜을 꺼냈다.


머릿속에서는

오래된 노래 한 구절이

자꾸만 맴돌았다.


앞서가는 사람들과
뒤에서 오는 사람들,
모두 다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왜 하필 그 문장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될 것 같다는 예감만이

손을 재촉했다.




2025년을 보내며

한 해 전체를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어느 하나의 시간,

유난히 무겁고 길게 느껴졌던

하나의 일에 대해 기록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하나의 문제처럼 보였다.

하지만 곧 여러 겹의 구조로 드러났고,

일의 영역에 머물던 것은

사람 사이의 갈등으로까지 번져갔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자리였다.


아무리 애써도

개인의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 안에서

하나를 넘기면

곧 다른 하나가

다른 얼굴로 다시 나타났다.


그 시간 동안

단지 하루를 넘기는 데에만 집중했다.


'오늘도 무사히'라는 말이

인사가 아니라

간절한 바람처럼 느껴졌던 날들이었다.




그 무렵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잠시 멈춰야 했고,

몸은 시간을 통과하기 위한

작은 도움들을 필요로 했다.


그제야 알았다.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견딤의 문제라는 것을.


끝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달력을 넘기는 일조차

조심스러웠던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지나고 보니

나는 개척자에 가까웠다.


없던 기준을 세웠고,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위험을 마주했고,

위기를 막기 위해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그때는

그저 버티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길이 없던 자리에

발자국이 남아 있다면,

그건 누군가 먼저

그곳을 지나왔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곁에 남아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누군가는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그 안으로 들어와 주었다.


말없이 등을 받쳐 주던 마음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그 자리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날,

이 일은

일단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에 도착했다.


숨을 고를 수 있었고,

터널의 출구를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에 이 자리를 맡게 될 누군가는

내가 내려놓은 무게를

그대로 이어받게 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끝은

마침표가 아니라

잠시 찍는 쉼표에 가깝다.




이 시간은

나를 멈춰 세웠다.


나는 늘 앞서가야 했고,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 과정에서

뒤에서 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를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이 시간은 그런 나에게

하나의 질문을 남겼다.


정말로 앞서가는 사람만이

괜찮은 사람인지.




이제야 그 노래 가사가

왜 마음에 남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앞서가던 사람도,

뒤에서 오는 사람도,

그 시간 안에 있던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 글은 성과에 대한 기록도,

실패에 대한 변명도 아니다.


어떤 시간을 통과한

한 사람의 조용한 기록이다.


아팠지만 나를 바꿔 놓았고,

끝내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남겨 준 시간에 대한.


나는 이 글로

그 시간을 조심스럽게 보내준다.



이 글은 긴 여정의 마지막 장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앞선 이야기들은

1편: 매몰되지 않는 것
2편: 다시 걷는 법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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