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되기에 도전 중인 나. 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했던 이 말을 그대로 돌려받고 있는 중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틀리기 싫고 한 번에 백점 맞고 싶은 그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텐데. 나는 학생들의 마음을 얼마나 공감해 주었던가. '얘들아, 미안하다. 사실은 나도 너희들과 같아.'
톨스토이 님도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고 하셨다니, 나의 것은 말해 무엇하랴.
'여기도 틀렸고, 저기도 틀렸고 다 틀렸어. 다시 해와.' 내가 채점하고 내가 고치는 무한반복.
'그런데 선생님, 답지는 갖고 계신가요? 아니, 답이 있긴 한건가요?' 이렇게 반항해 본다.
'응. 답지는 없는데, 그게 아직 쓰레기라는 것은 확실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자기 검열관의 등장.
동기들의 단톡방에는 매일, 매시간 합격소식을 알리며 축제분위기. 그것을 보는 나의 감정은 대략 세 가지였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 나만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 단톡방 내의 합격률이 너무 높아서 브런치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합격선을 낮춘 건 아닌가 하는 음모론 같은 의심. 세 번째 마음이 가장 문제다. '선생님, 생각보다 시험이 쉬운 가요? 요정도 쓰레기는 살짝 패스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욱신거리는 손목을 부여잡고 스스로에게 불쌍한 척을 해본다.
쓰레기 같은 답안을 자꾸 제출하며 포기하고 싶은 학생, 엄격하며 공감해주지 않고 밀어붙이는 선생님. 두 개의 자아가 대환장파티를 벌인 1주일의 시간이었다. 일요일 아침, 요 녀석들이 깨어나기 전에 마지막 퇴고를 하고 던지듯이 제출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나에겐 고요하고 평화로운 자아가 남아있었던 것이다. 수정버튼이 있었지만 한 번도 수정하지 않았다. 그 버튼은 '넌 학생, 난 선생' 자아를 깨울 것이 뻔하므로.
평상시와 같은 월요일이었다. 일주일간의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진 나는 온화해졌고, 순조롭게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겉보기에는 그랬단 말이다. 머릿속에는 일주일간 함께했던 그 아이들이 이미 등장해 있었다.
'내가 합격할 리가 없잖아. 떨어지면 어떡하지?'
'떨어지는 것도 다 배우는 과정이야. 다시 도전해 보면 돼'
'저는 다시 할 자신이 없어요...'
'니가 애들한테 했던 말들을 너한테도 적용시켜 봐.'
브런치에서 펜모양의 필기체 b 알림이 왔다. 곧이어 등록한 메일에도 알림이 왔다. 모두가 숨죽이고 있다. 나의 고요자아가 담담히 버튼을 누른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합.격. 합격이다. 합격이라니. 내가 합격이라니. 현실감이 없다가, 가슴이 뭉클하고 울렁거렸다. 남편의 귀에 속삭였다. "나 합격." 이렇게 말을 내뱉으니 실감이 난다. 단톡방에는 무심한 듯 시크하게 합격사진을 올렸다.(사실 많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수업 중 받은 연락에 마음이 급해서 그랬습니다. 그런 톡에도 열렬히 축하해 준 모두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일 년 전에 브런치에 도전할까 생각만 하다가 접었고, 그 이후엔 생각조차 안 했다. 그랬던 내가 우연히 본 인스타 피드 때문에 브런치 작가되기 도전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충동적으로 시작한 것 같은 나의 행동이 스스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나의 감정도 정답인지 오답인지 판단하는 성향의 사람인지라 그 과정 없이 불쑥하는 행동은 내 머릿속에 커다란 물음표를 새겨 넣기에 충분했다.
계획 없이 저질러버린 나의 행동은 지나고 보면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인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도 그러하다. 합격 소식 후 겪은 일들과 앞으로 겪을 일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정리를 한다. 나의 무의식이 혹은 나의 고요자아가 다른 생각이 틈타기 전에 나를 브런치로 살짝 밀어준 것이다. 글 쓰는 삶을 살라고. 그래서 인간으로서 엄마로서 더 단단해지고 더 깊어지라고.
글 쓰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일상이 힘에 부치게 느껴진다면, 그럴수록 더욱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터널이 너무 어둡고 길어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끝이 안 보인다면 글을 써보면 좋겠습니다. -이은경, <오후의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