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었던 어제는 매년 그랬듯이 맹렬한 추위를 자랑했다. 올해 고3인 우리 강이가 시험을 치르는 날이기에 이번만큼은 좀 덜 추웠으면 했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길을 나서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한 시절이 마무리되어 간다는 것을 느꼈다.
뒤돌아보면 나는 참 특이한 엄마였다. K-엄마라고 하면 자식에게 '책 읽어라, 공부해라' 잔소리하는 모습을 흔히 떠올리지만, 나는 내가 책 읽느라 바빴고 공부해서 내 글 쓰기에 바빴다. 5년 전 문득 브런치 작가 되기에 도전하고 합격하면서 내 인생은 궤도를 수정한 기차와도 같았다.
휘날리는 필력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바라보면서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브런치만큼은 중도포기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갔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나에 대한 기대가 낮아서였을 것이다. 어차피 글로 밥 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그저 하고 싶었고, 발행하는 글이 쌓여갈수록 느껴지는 충만함이 좋았다. 정말 그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시간들은 나를 이미 다른 곳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수학강사로서 나의 생각을 담아본 글들은 책 출간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이런 평범한 글이 책으로 만들어진다고?' 라며 얼떨떨해하며 책을 내기로 하고 계약서를 쓰고, 계약금이라는 것이 입금되던 날. 통장을 확인하며 느껴버린 그 몽글몽글한 마음은 아직도 내 안의 어딘가에 두둥실 떠다니고 있는 것만 같다.
1쇄로 끝날 줄 알았던 나의 책은 10쇄까지 찍으며 나를 각종 유튜브에 출연시켰고, 강연 무대에까지 오르게 하였다. 동네의 조그만 학원에 상담문의가 쇄도하면서 정신없는 날들이 이어졌고, 학원은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며 지금의 이 건물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신, 강사들 교육을 시켜야 하는 입장이라 차원이 다른 공부가 필요하다. 공부에는 끝이 없고, 그리하여 매일 글감은 쌓여가고 있다. 평화롭고 조용한 삶을 추구하던 나. 지금처럼 소란스러운 인생은 아직도 낯설지만 어쩌겠는가. 5년 전 이은경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팔자가 달라질 선택을 내가 스스로 했는걸.
강이에게 약속했던 한 달간의 긴 가족여행이 오늘부터 시작이다. 우리 강이는 엄마의 보살핌 없이도 고3 수험생활을 잘 마무리해 줘서 고맙고, 언제나 나를 지지해 주는 남편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