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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Nov 29. 2023

그녀의 속사정

메타인지는 언제나 중요하구나

H는 평소 성실하고 모범적인 이미지의 학생이다. 작고 마른 몸에 오밀조밀 예쁘게 생긴 얼굴, 깔끔한 인상의 6학년 소녀. 90분의 수업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는다. 엉덩이 한 번 떼지 않고 집중하는 모습은  그녀가 아직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라는 것을 종종 잊게 만들기도 했다. 숙제도 열심히, 요령 피우는 법은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지난여름방학을 앞두고 일이 생겼다. 지각 한 번 하지 않던 아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전해 들은 어머님의 이야기는 우리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학원을 한 달간 쉬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동안 숙제로 너무 힘들었다는 것. 우리 학원에서는 학생이 해내야 할 숙제의 양을 강요하지 않는다. 물론 공부를 너무 안 하려는 학생, 습관이 안 잡힌 학생에게는 강제할 때도 있다. 하지만 모범생인 H에게 그렇게 할 이유가 없었다. 언제나 본인이 할 수 있다고 선택한 숙제의 양이었다.


어머님의 말을 들어보니 실상은 우리의 생각과 달랐다. 그 숙제를 해내느라 새벽 1시가 넘어서까지 잠도 줄여가며 애썼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 한다고.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안을 학원 측에서 뒤집을 힘은 없었다. 공부는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하며, 이번에는 그렇게 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일은 다시 반복될 것이라고.




그게 바로 오늘이 되었다. 올라와야 할 과제가 없다. 항상 5분에서 3분 정도 전에 학원에 도착하던 아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핸드폰도 꺼져 있다. 지난번에도 이런 식이었다. 전 시간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을 했고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어떠한 전조증상도 없이 불쑥, 당황스럽게 일은 일어나 있었다. 


어머님이 일로 바쁘신 분이라 뒤늦게 연락이 닿았고, 상담을 했다. 내용은 지난번과 같은 이야기. 결국 또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몸이 자꾸 아프단다. 아프니까 수학문제도 풀기 싫고 그렇단다. 아플 수 있지. 그래서 수학공부 하기 싫을 수 있지. 그렇게 되기까지 자신을 몰아붙인 그 아이가 안쓰럽기도 하다. 아직 6학년인데, 입시를 앞두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어머님은 아이가 자존심이 강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상은 높고 현실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괴리감이 그 아이를 지치게 한 것이겠지. 그렇게 다 내려놓고 싶을 정도가 될 때까지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다니.


결론적으로 H는 지난번 일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없었던 것이다. 그저 원하는 대로 한 달간 실컷 쉬었고, 복귀한 후로는 그 전과 같은 패턴으로 돌아갔다. 한 달의 휴식 자체가 해결책일 수는 없다. 그 시간 동안 자신을 되돌아봤어야 했다. 그것을 하지 않았으니 반복될 수밖에. 


그동안 그 누구보다 애써가며 노력한 실력과 성과는 한 번씩 밀려오는 파도를 맞아 약간의 손상을 입을 것이다. 이것이 거듭된다면 손실은 점점 더 커질 것이고, 결국 적당히 공부한 아이와 비슷해지거나 오히려 더 못하게 될 수 있다.




사실 H는 요즘 나의 모습과 닮아 있다. 아직 초등학생임에도 수험생처럼 몰아붙인 그 아이에게서 안 써지는 글을 붙잡고 끙끙대며 무리하는 내 모습을 본 것이다. 이제 겨우 한 달 정도 된 브런치 작가(라고 하기엔 민망한 지경)인데, 마감을 코 앞에 둔 전업작가처럼 무리했다. 글은 글대로 발행조차 못하고, 생활은 뒤죽박죽 되어버렸다. 일상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으며 결국 고개를 든 생각.

'그만할까.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해서 뭐가 되겠어.'


공부는 꾸준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뛰어난 재능을 타고나더라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좋은 실력을 가질 수 없다. 어디 공부뿐인가. 일, 결혼생활, 육아, 각종 사회생활, 그리고 요즘하고 있는 글쓰기까지 마찬가지일 것이다.


꾸준히 하려면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무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 즉, 메타인지가 놓다는 의미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하고, 그것을 해낸 나를 칭찬해 주자. 그래야 오래 할 수 있고, 끝까지 남아있을 수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법이다.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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