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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Mar 07. 2024

김밥집의 반전

맛있는 성장스토리

나는 김밥을 좋아한다. 야채김밥, 참치김밥, 치즈김밥, 소고기김밥, 돈가스김밥, 꼬마김밥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각종 재료들이 입안 가득 채워지며 어우러지는 그 맛이 참 좋다.

좋아하는 김밥을 직접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직접 김밥 만들기를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달걀지단을 부치고, 햄을 볶고, 시금치를 삶고, 당근 채 썰고, 단무지 물기를 짜고 밥에 소금 간을 하며 준비를 했다. 거창한 재료준비가 무색하게 나의 김밥 마는 실력은 처참했다. 김 위에 밥과 재료를 올리고 돌돌 말기 시작하는 순간, '망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좋은 재료로 그렇게 맛없게 만들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걸 내가 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나의 손재주를 원망하며 좌절감만 적립하고 결국 직접 김밥 만들기는 포기하였다. 나는 김밥에 대해 '갑'이 되지 못하고 '을'이 수밖에 없었다. 맛있는 김밥집은 나에게 절대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이었다.




직장 근처에는 김밥집이 하나 있다. 유일하게 딱 하나 있는 김밥집이라 내게 선택권 따위는 없다. 하나도 감지덕지한데 다행히 김밥 맛도 꽤 괜찮았다. 그곳에서 각종 김밥을 시도해 봤으나 기본김밥이 가장 맛있었다. 적당히 들어간 유부의 달콤 짭짜름한 맛과 기본김밥의 적당한 가격은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일주일에 적어도 3번은 사 먹었다.

작년 가을즈음 그 김밥집에는 변화가 감지되었다. 매장의 구조가 바뀌고 키오스크가 설치되었다. 주인이 바뀐 것이다. 유일한 김밥집이 없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맛의 변화는 매우 아쉬웠다.

"김밥이 건조해!" 나의 첫 반응이었다. 살면서 건조한 김밥은 처음이었다. '참기름을 아끼려고 그랬나, 재료가 문제일까...' 내 나름대로 원인을 (쓸데없이) 생각해 보았다. 주인이 바뀌고 음식 맛이 예전만 못하니 그 가게가 곧 문을 닫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도 했다. 그러면서 정작 내가 그 가게에 발길을 끊게 되었다.

올해 1월부터 겨울방학 특강수업으로 오전부터 저녁까지 무척 바빠서, 매번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배달앱에 배달료까지 지불하며 음식을 시켰고, 종종 만족스럽지 못한 식사도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옆에 김밥집이 있지만, 한번 끊은 발길은 특별한 계기 없이 되돌리기 쉽지 않았다.




어느 날 수업이 늦게 끝나서 점심을 빨리 해결해야 했다. 배달 시간을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할 수 없이 '맛없어도 어쩔 수 없다. 배만 채우자.' 라며 김밥집으로 향했다. 나는 유부우동과 김밥, 남편은 생등심 돈가스를 시켰다. 김밥을 하나 입에 넣은 순간 '이건 맛있는 김밥이야'라는 느낌이 왔다. 아무 기대 없이 먹어서 그런가 아님, 배가 너무 고팠나. 성급하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 후 수많은 점심을 그곳에서 해결했다. 김밥 맛은 확실히 달라졌다. 재료의 풍성함과 촉촉한 어우러짐이 일품이었다. 심지어 주인장이 바뀌기 전의 맛보다 뛰어났다. 김밥뿐 아니라 김치볶음밥, 돈가스, 김치찌개, 참치알밥 등 다양하게 먹어보았다. 음식의 퀄리티는 전반적으로 상승해 있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원래 잘하는 사람보다 처음에는 부족했지만 점점 실력을 쌓아가는 사람을 좋아한다. 신인 때 발연기를 선보였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점점 연기력의 성장을 보여주는 배우에게 더 마음이 가고 매력을 느낀다. 초창기에는 대중의 무관심으로 고전했지만 포기하지 않는 열정으로 꾸준히 좋은 음반을 내는 가수에게는 기꺼이 내 지갑을 연다. 학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입생 진단테스트에서 20점대로 시작했지만 꾸준히 노력하여 80점대로 성적을 올린 학생은 처음부터 100점인 학생보다 정이 간다. 그들의 작은 성장에도 크게 기쁘고 가슴 뿌듯하다. 


김밥집은 모르긴 몰라도 그냥 발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손님들의 리뷰에 고민과 수정을 거듭하며 연구했을 것이다. 손님들에게 좋은 음식,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아무 노력 없이 그냥 얻는 성장은 없는 법이니까. 

'맛있게 성장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사 먹겠습니다. 오래오래 장사해 주세요.'

부끄러워서 이렇게 직접 말할 수는 없지만, 내 신용카드를 키오스크에 기꺼이 넣으며 내 마음을 표현하겠다. 


오늘도 김밥 먹으러 가야지.



맛있어지니까 사진발도 잘 받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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