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 역 계단을 올라오는데, 어스름 저녁 하늘이 보이면서 환한 벚꽃이 눈앞에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이맘때쯤. 흙구덩이에서 놀고 온 남매를 엄마는 부산하게 씻기고 저녁을 먹이고
여느 저녁때와는 다르게 외출복을 입히셨지요.
우리 세 식구는 아빠의 퇴근을 기다렸습니다.
어떻게 저녁에 진해 군항제까지 네 식구가 갔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다만, 길가에 가득했던 번데기 냄새, 나무 아래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의 무리,
갓길 행상의 요란한 장난감 불꽃. 그리고 환한 불빛 아래 만개한 벚꽃이 장면 장면 기억납니다.
어째서 주말 낮이 아닌 평일 밤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꽤 오랫동안 봄날의 추억과 함께 머물러 있었습니다.
여쭤보진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의외로 기억을 못하실 수도 있을테니까요.
홀로 의문에 대답같은 것을 찾게 된 것은 얼마 전입니다.
아빠는 나에게는 아빠였지만, 주말에는 시골의 할머니께 가서 일손을 도와야 하는 장남이었음을 요.
회사원이자, 네 식구의 가장이고, 어린 남매의 아빠이자, 농사짓는 부모님의 장남으로
당신은 이른 봄날에도 누구보다 분주했었겠군요.
그렇게 애써 빚어준 덕분에 대낮같이 환한 진해의 밤이 큰 기억으로 남아 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전화기 넘어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우린 벚꽃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그것은 2018년 오늘 만개한 금오산의 벚꽃이었어요.
28년 전의 군항제에 아빠가 우리에게 만들어준 봄날의 추억은 잠시 스쳐가고 말았어요.
아까 못한 말이 남아 글로 남겨요.
쉴 새 없이 피곤하셨을 텐데 당신의 저녁 시간을 내어
지금도 꺼내보는 봄날의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