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1505호
폭우가 세차게 쏟아지던 날 밤, 외할머니는 매시간마다 집으로 전화해 물으셨습니다.
"너거 엄마 집에 왔나?"
벌써 5번째였습니다. 드물게 가끔 전화하시는 외할머니가, 그날은 엄마에게 무슨 용건이 있으셨나 봅니다. 휴대전화가 없던 그 시절. 어느 늦은 일요일 오후에 외할머니는 전화로 엄마를 찾으셨고, 나는 엄마가 친구들과 버스 타고 멀리 나들이 가셨다고 말씀드렸지요.
해가 저물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산도 안 가져가셨는데... 싶었지만 지금쯤 돌아오는 버스 안이겠거니 하면서 저녁을 먹고, 주말 연속극과 개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내일 학교에 입고 갈 교복과 가방을 챙기면서, 비 오는 월요일 아침 등굣길 생각에 머리와 가슴속에도 커다란 돌덩이를 하나씩 담고 있었습니다.
"아, 아직 안 왔다고요. 비 오니까 길이 막히는가 보지..."
계속되는 할머니의 전화에 짜증을 내자, 당신은 크게 소리를 치셨습니다.
"이노무손아, 니는 이 빗속에 너거 엄마 걱정도 안되나?"
부끄럽게도 그 순간 처음으로 엄마가 당신의 귀한 딸임을 실감했습니다. 어째서 나는 이제껏 엄마는 나의 엄마라고만 생각했던 걸까요? 나의 엄마라는 이유로 못됐게 굴고, 날카로운 말로 상처를 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엄마의 사랑과 걱정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지요. 엄마도 나와 같이 외할머니의 사랑과 걱정으로 자란 소중한 딸인데 말입니다. 뒤늦게 엄마에 대한 걱정으로 초조하게 전화 앞에서 시계 바늘만 바라봤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비는 더 세게 내렸고, 어느새 양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오셨습니다. 예상대로 갑작스런 폭우에 길이 막혀 오래 걸렸다고 했습니다. 외할머니가 걱정하시더라고, 전화드리라고 말하고선 방문을 쾅 닫고 이불속에 들어갔습니다. 안도와 부끄러움에 눈을 감고 앞으로 엄마에게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다짐은 그때뿐이었긴 하지만 말입니다.
얼마 전 팔순 잔치를 치르신 외할머니는 아직도 들일을 하실 만큼 정정하십니다.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엄마와 저의 곁에 오래 계셔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