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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ccoli pen Oct 22. 2021

내 꺼다 (세 살, 11월)

여섯 살의 스케치북


세 살 무렵부터 집안 여기저기에 낙서가 생겼다. 게다가 아이가 가장 즐겨 사용했던 필기도구는 하필이면 흔히 ‘네임펜’이라고 부르는 유성펜이었으므로 지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비슷하게 그려놓은 낙서가 계속 보여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동그라미와 함께 작은 막대기가 그려져 있었다. 한 개만 그린 것도 있고, 여러 개를 다닥다닥 패턴처럼 붙여놓은 것도 있었다.

어느 날은 아이가 아끼는 블럭에도 같은 낙서를 해 놓았길래 자꾸 여기저기에 낙서를 하면 안 된다고 일러주었다. 그런데 내 얘기를 듣더니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내 꺼라고 한 거야.”라고 대답했다. 낙서한 아이라기에는 말하는 모양새가 하도 당당해서 다시 물었더니, 답답하다는 듯이 “여기 ‘이’라고 쓴 거야. 내 꺼니까.”라고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다섯 번이나 썼는데...”라고 덧붙였다. 왜 이해를 못 하냐는 듯한 아이의 표정에 할 말을 잃었다. 아이의 성은 ‘이’ 씨다. 그러니까 아이는 자기 물건에 나름대로 사인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네임펜을 가져다가 쓴 것인가 싶어 웃음이 나왔다가 낙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진지한 서명이었다는 것에 놀라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 일이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기 것을 ‘내 것’이라고 또렷이 말하는 아이의 당당함이었다. 낙서하지 말라는 엄마의 나무람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정확하게 이유를 이야기하는 기개가 참 부러웠다. 엄마인 나는 딸아이와 다르게 내성적이고 소심하다. 해야 할 말을 하면서도 주변의 이목을 살피는 나 자신이 답답할 때도 있다. 나도 세 살이었던 그때 내 아이처럼 좀 더 당당하고 또렷하게 나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용감한 진짜 ‘어른 엄마’가 되고 싶다. 그리고 이 책 안에 나의 마음과 용기를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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