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의 스케치북
어린이집에서 졸업할 무렵, 틈날 때마다 그림을 그려놓은 딸아이의 스케치북 뭉치를 받았다. 일곱 살이 되면서부터는 사람을 제법 그럴듯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하면서 그림들을 감상하던 중 호기심이 가는 작품이 있었다. 빗방울 속의 정체 모를 형체들. 눈 결정을 그린 것일까 싶어서 물어보았더니 돌아온 대답은 뜻밖에도 ‘미세먼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가장 말썽을 일으킨 존재는 미세먼지였다. 매일 긴 산책을 하러 나가야 하는데 미세먼지에 초미세먼지까지 심한 날이면 엄마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원장 선생님은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아이들과 산책을 하러 나가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부모가 따로 어린이집에 남기를 부탁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이들은 날마다 산에서, 놀이터에서, 공원에서 긴 시간을 놀다가 들어왔다. 나는 미세먼지가 있는 날을 다 제외하고 나면 나가서 놀 수 있는 날이 거의 없으리라 생각했으므로 딸아이는 원에 남지 않고 대부분의 외부 활동에 참여했다.
즐거운 산책 속에 함께 하는 미세먼지들. 그래도 아이는 달팽이를 손에 들고 웃고 있다. 행복했던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즐거운 감정과 서늘한 현실이 공존하는 묘한 그림이다.
3년이 지난 지금은 코로나로 학교도 못 가는 날이 많다. 익숙하게 온라인으로 학교 수업을 받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을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참 미안하다. 한여름에 마스크를 낀 채 외출하고 들어와서 인중에 가득 찬 땀을 쓱 닦아내는 아이를 볼 때면 미세먼지나 바이러스가 모두 사라져서 마스크 따위는 필요 없는 그날을 하루라도 빨리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