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가 하노이에 도착했을 때는 우기였다. 지나가는 비가 습도를 높여 놨지만 폭양보다는 나은 날씨였다.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가이드가 자리 안내를 했다. 첫날 저녁 식사는 베트남식 샤부샤부 러우팃보였다. 패키지 일행인 60대 후반 아저씨들 옆자리였다. 초면인데 같은 테이블에 앉아야 하나 싶어 잠시 머뭇거리자 한 아저씨가 목소리를 높여 “이쁜 언니들이 오니 좋네. 여기 옆에 앉아요. 술도 시킬 거예요” 하였다. 건너편 빈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친구를 데리고 서둘러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등뒤에서 누군가 어색한 억양으로 ‘언니, 언니’ 하며 불렀다. 돌아보니 등 굽은 작은 몸에 큰 짐을 지고 있는 행상 노인이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다시 ‘언니, 언니’ 하며 부채 모양의 물건을 들이 밀었다. 베트남 할아버지한테서 언니 소리를 다 듣다니! 민망해진 나는 못 들은 체하고 버스로 향했다.
이튿날은 하롱베이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렸다. 아침 식사 때 맞은편에 앉았던 부부가 앞자리에 앉았다. 예순 남짓으로 보이는 여자는 몸이 건장하고 목소리가 컸다. 남편은 체격이 깡말랐는데 말씨가 조용한 사람이었다. 여자는 특이하게도 우리에게 말할 때 자기 남편을 ‘이 남자’라고 지칭했다. 자기네 부부는 나이 차이가 많다는 둥, 아들이 하는 사업이 잘 돼서 세금을 많이 내니까 남편이 베트남 참전하고 와서 연금을 많이 받아도 나라에 미안하지는 않다는 둥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잘도 풀어냈다. 친구는 그런 그녀를 ‘사모님’이라고 불러주며 상냥하게 대했다. 반면 나는 그 ‘사모님’의 말끝이 짧아지고 있는 것에 귀가 거슬렸다.
하롱만의 비경을 유람하는 오후 일정을 마치고 슈퍼 구경을 갔을 때였다. 매장을 둘러보고 있는데 진열대 안쪽에서 ‘언니야! 언니야!’하고 부르는 새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모님’이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콩 같은 거 있잖아, 여기서 봤어?’ 다짜고짜 반말로 질러대는 그녀의 말투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과 달리 저쪽에서 본 거 같은데요……’ 우물우물 대답을 해주고 말았다. 안 그래도 부리부리한 두 눈을 치켜뜬 그녀는 ‘확실해?’ 하고 다그치기까지 했다. 해외여행을 와서 콩을 사간다고 유난을 떨지 않나? 몇 마디 말도 안 섞어 본 중년 여자를 멋대로 ‘언니’라고 부르지를 않나! 야무지게 무시해주고 돌아섰어야 했는데 바보같이 군 나 자신에게 부아가 치밀었다.
밤에는 야시장 구경을 나갔다. 시장은 아케이드 안에 있었다. 통로 양쪽으로 소위 명품 브랜드 모조품을 파는 좌판이 즐비했다. 시장은 대낮같이 불을 밝혔는데 쇼핑객은 의외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썰렁한 분위기 탓인지 상인들의 이목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상인들은 모두 여자들이었는데 경쟁하듯 손짓하며 우리를 ‘언니, 언니!’ 불러댔다. 기중에는 할머니들도 더러 있었다. 그녀들의 호객 등쌀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우리는 서둘러 시장을 빠져 나왔다. 장사하는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여자를 ‘언니’로 부르나 싶었다.
여행 내내 자주 ‘언니’ 소리를 들었다. 예의 아저씨들과 ‘사모님’은 자기들보다 젊은 여자인 나를 만만히 여기고 ‘언니’ 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물론 그들은 친근감의 표시였다고 변명할는지 모르겠다. 의도가 어떠했던 그들의 선을 넘는 언사는 호칭마저 나를 불쾌하게 했다. 베트남 노인이 ‘언니’라고 부르면서 호객을 했을 때는 절박하고 비굴하게까지 보여 마음이 상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노인이 ‘언니’라는 말을 제대로 알고 사용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야시장 여자들처럼 ‘언니’는 그저 영어의 ma'mm처럼 여성을 통칭하는 한국말정도로 알았을 것이다.
호칭도 유행을 탄다. 그것들 중 다수는 가족관계에서 비롯되는 경향이 있다. 친근하게 말을 붙이려는 심리 때문일 것이다. 여성 호칭을 생각해 보았다. 얼마 전 까지 나이 든 익명의 여자들을 ‘아주머니(아줌마)’로 불렀다. 그러나 ‘아줌마’가 비칭(卑稱)으로 인식되기 시작하고부터는 ‘이모’라는 더 가까운 가족 호칭이 나타났다. 예컨대 식당 종업원이나 가사 도우미 등이 이모라 불리고 있다. ‘언니’ 라는 말이 나타난 배경도 엇비슷하다. ‘아가씨’라는 호칭이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된 후에 ‘언니’라는 호칭이 대세가 되었다. 서비스직이나 판매직 여성에게 ‘언니’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심지어 딸뻘도 안 된 여성에게도 무분별하게 쓰인다.
최근에는 ‘아줌마’나 ‘아저씨’ 대신 ‘선생님’이라는 경칭의 사용이 늘고 있다. ‘선생님’이 존경의 의미가 상실되어 일반 호칭이 된 것이다. 호칭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호칭을 인플레이션 시키는 것만이 답이 되어줄까? ‘언니’라는 호칭도 함부로 사용하다보면 언젠가 어감이 나빠져서 대체어가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말하는 사람의 태도가 부적절하면 듣는 사람에게는 호칭 자체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말과 함께 행동에 같이 드러나야 할 것이다.
친구에게 ‘언니’ 소리 때문에 여행 중에 받은 스트레스를 털어 놓았다. 열을 내는 나를 보고 그녀는 깔깔거렸다. 까칠한 나와 달리 성품이 너그러운 친구는 편하게 여행을 즐긴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