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래원 Mar 31. 2024

유년의 비밀

황지우의  <태양제의>


태양제의


 울 아버지 해우 장시한다고 집 나간 지 오래인 채로, 중국인 채소밭 끝간데 없는 산수동 꼭대기 외딴집 두 채 있었습니다. 장다리 꽃밭 노랑나비 잡으러 갔다가 돌아오면 울 엄니 문 앞에서 아부지 기다리고, 우리집은 숫제 휑한 구멍이었지요. 

 저는 울 엄니 검정치마 한바꾸 돌려 그 안에 들어가 멀리 채소밭 바깥을 바라보곤 했는디요, 중국인 똥 퍼나르는 황톳길로 하루에 두어 채 꽃상여넘어갔지요. 


            어어허 허허 하야 어어화뒤야


 한 발 나가면 두 발 뒤로 물러나는 그 아름다운 집이 공중에 떠서, 붉은 지평선 빠져나갈 때, 울 엄닌 죽어서 받는 그 호강 부러워하셨어요. 

 지난 겨울 내 연이 날아가버린 그 하늘로 만장들이 안내하는 상여가 마저 다 들어가고 나면, 그곳까지 저는 두 팔을 돌림시롱 달려갔습니다. 

 공동묘지로 가는 황토 고개, 떨려서 더는 갈 수 없는 그곳, 탱자나무 가시에 흰 창호지연 꼬리가 부르르 떨고, 한동안 저는 어떤 세상의 문풍지소리를 듣다 왔죠. 


 울 엄니 중국인 마을에 일 나가고 없으면 저 혼자 아부지 만나러 장다리 꽃밭에서 온종일 놀고, 한 마지기 무꽃밭 떠매고 날아가는 나비 쫓아가다 중국인 똥통에 빠질 뻔하고, 그 무서운 구멍 옆, 고압선 전신주가 짐승처럼 웅웅거렸지요. 


 아부지, 빨리 와라, 아부지야, 울 엄니 운께 빨리 와......


 흙범벅이 되어 저는 돌아왔습니다. 

 울 엄니 빨래하고 가고 없는 날, 뒷집 가시내랑 깨당벗고 울 엄니 시집올 때 해온 오동나무 장롱 속에 들어가 놀았던 적이 있는디, 캄캄한 그 속, 허옇게 빛나는 속옷들에서 나는 나프탈렌 냄새에 취해가지고 저는 곤히 잠들어버리고, 울 엄니 돌아와 가시내는 노올래갖고 옷도 못 입고 도망가고, 헌디 울 엄니 저한테 끝내 한마디도 안 하시는 거 있죠?

 그뒤로 울 엄니 일 나가고 안 계시면 혼자서 마당에서 해 보고 놀았더랬습니다. 오래오래 보고 있으면 해는 똥그란 물이었다가 환한 구멍이었다가 장광에도 토방에도 정재에도 돌아다니는 빛 솜사탕이드라고요. 잡으면 제 꼬막손 밖에 또 나타나는 해, 저는 해 잡으러 종일토록 집 안을 갈고 다녔지요. 뭐. 

 그러다 어느 날 울 엄니 보따리 인 이마에 노을을 밀고 집에 들어오셨을 제, 제 눈에선 누런 진물이 났고, 눈이 퉁퉁 부어 보이지 않던 날, 엄니 절 업고 시내 병원엘 갔죠. 눈을 까뒤집고 들어오는 안과의 빛, 포르말린 냄새나는 엄청나게 큰 해가 제 눈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만큼 울었습니다. 

 그날 밤 엄니 품에서 잘 때 제가 쪼물딱쪼물딱 만진 울 엄니 젖, 제가 잡은 해.   


- 황지우 (1952 ~)의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중에서 



  어머니 치맛 속에 들어가 숨을 만한 키에  꼬막손을 가졌다면 이제 갓 아기를 면한 일곱 살쯤 되었을까? 뇌리에 남은 유년의 기억들은 황지우 시인의 성격과 예술 감성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영특한 아이에게는 비밀이 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맥락도 제 나름 꿰어 맞출 줄 알고 어른들의 아픔이나 기쁨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알고도 말하지 않았던 것, 혼자 보았던 것, 부끄러운 것들을 아이는 간직하고 성장한다. 

 아이가 털어놓는 비밀은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같이 다채로운 장면으로 이어지고 무의식에 잠겼던 내 유년의 이야기를 깨우는 아름다운 시가 되었다. 

 필사하듯 한 단어 한 단어 꼭꼭 눌러 읽으며 시를 타이핑했다. 


  부모가 부재해 집이 휑할 때 공동묘지로 향하는 상여를 보는 어린아이에게 무시로 만나는 죽음이란 건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상여 소리에 실려 공중에 떠 가는 꽃상여를 보고 호강한다고 부러워하는 어머니를 보고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어령 선생님이 생전에 죽음을 처음 느꼈던 순간을 이야기한 게 생각난다. 여섯 살 때였다고 한다. 밤에 잘 때 병환 중인 어머니 코에 숨을 쉬나 안 쉬나 확인하려고 손을 대보곤 했단다. 어느 환한 대낮 정오에는 혼자 보리밭 오솔길에서 굴렁쇠를 굴리며 놀다가 죽음을 느끼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래선지 선생은 평생을 죽음을 곁에 두고 의식하며 삶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죽음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 

 

 내가 죽음을 처음으로 목도한 순간을 기억한다. 그때 내 나이도 여섯 살이었다. 머릿속에 사진처럼 찍혀 남아 있는 장면 두 개가 있다. 시골집 안방에 친할머니가 누워계시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상복을 입은 아빠와 큰 아버지가 흐느끼며 흰 끈으로 할머니를 감싸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상여가 언덕을 오를 때 만장이 휘날리고 그 주변을 돌아 흐르는 상여꾼들의 무겁고 깊은 상여소리에 나는 깊은 슬픔을 느꼈고 영원한 이별의 의미를 감지했기에 아빠가 가여웠다.   

 

 죽음을 접한 적 있는 아이는 어른들 몰래 훌쩍 큰다. 죽은 자를 부러워하던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할 만큼 아이는 조숙했기 때문에 그 일을 잊지 않고 시로 쓸 수 있었다.   

 

 고맘 때 아이들도 성에 관심이 있다. 제 몸에 관심이 있고 내 몸과 다른  성의 몸도 궁금해한다. 이웃집 가시내와 엉뚱한 짓을 한 것을 들켰는데 모른 척하신 어머니는 많이 배운 요즘 엄마들보다 지혜로웠다. 비밀을 지켜준 어머니 덕분에 아들은 눈이 짓무르도록 당당히 태양을 올려다보며 그것을 잡겠다고 뛰어다녔다.


 어머니가 부재한 하루 동안 비밀을 만들며 무럭무럭 자라지만, 엄니 품 속에 들어가면 아들은 어린아이일 뿐이다. 쪼물딱 쪼물딱 만지는 엄니 젖은 그가 잡은 해. 꿈을 이룬 아이는 엄니 품 속에서 충만하게 잠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박꽃, 호박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