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의 <거룩한 식사>
나이 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 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야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황지우(1952~ )의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중에서
대학 1학년 노동법 수업 첫 시간에 교수님이 하신 당부가 잊히지 않는다.
" 자기 힘으로 일해 입에 밥을 넣는다는 것은 거룩한 일이에요. 여러분들은 꼭 그렇게 사세요."
너무나 당연한 말이어서 의아했지만 거기에는 깊은 의미가 있었다. 교수님은 꿈에 부풀어 있는 법대 새내기들에게 거창한 진로를 말하지 않았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던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해서 자기 입에 밥을 넣고 그 힘으로 가족을 살린다면 그것은 훌륭하고 귀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었다.
시 속의 나이 든 남자는 그렇게 살아온 우리들의 아버지일지 모른다. 혼자 밥을 먹으면서 어렵던 시절의 어린것들이 떠올라 목이 멘다. 밥을 넘기는 일은 한 세상을 살아내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다 자라 떠나고 뒷머리는 풀어졌지만 그는 오늘도 숟가락 한가득 국밥을 입 쩍 벌리고 먹는다. 그는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살아갈 것이다. 서러워 보일지언정 그의 식사는 거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