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도 벼락치기 Ep. 3 - 12월생 아이 1편

평균의 비겁함에 넘어가지 말라.

by 양벼락

2022년 1월 4일에 제왕 날짜를 미리 잡아놨던 나는 12월 초부터 높아지는 혈압으로 인해 14일에 응급제왕으로 아이들을 낳고 말았다. 단태아였으면 1월 24일이 출산 예정일이었는데, 임신중독증으로 아이들을 6주나 빨리 낳아놨으니 니큐에 들어가 있는 아이들을 보는 그 자체로도 마음이 아팠지만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1월생을 낳을 뻔 했다가 남들이 다 기피하는 12월생을 낳은 엄마가 되어 패배감도 적지 않았따. 원래부터 12월생으로 예정이 돼 있었다면 덜 억울했을까? 아이를 낳고도 산후 출혈로 병원을 오갔던 나는 12월 29일 즈음에나 퇴원할 수 있었고 지금이 12월인지 1월인지 헤아리지도 못한 채 걱정도, 생각도 없이 새해를 맞이했다.


많은 사람들이 12월생들은 치인다고 한다. 다들 11월생, 10월생도 있고 모든 아이들이 다 1월이나 2월에 태어난 것도 아닌데 1월부터 11월까지 태어난 아이들의 최후의 보루로 12월생이 있다보니 언제나 12월생인 것은 불리하다는 여론이 있다. 한 해의 초반부에 태어난 아이들은 같은 해의 다른 아이들보다 발달이 빠르기 때문에 누적적으로 칭찬을 많이 받아 앞으로도 더 잘하는 아이들이 될 것이라고들 한다. 예외라는 것이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그렇다고. 평균의 오류에 빠지지 않겠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다가도 그런 글들만 보면 발끈하는 걸 보니 역시 나도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나보다.


아이를 급히 낳고 난 지 1년 정도가 지나고 나니, 내가 자주 들락날락거리는 쌍둥이 엄마들의 카페에 속상하다는 글들이 올라온다. 1월에 태어날 아이였는데 조산을 해버렸다는 글들. 내가 올린 것처럼 내 마음이고 내 문장인 글들. 1월까지 버틸 수 있으면 버텨서라도 1월생 만들어주는 것이 좋을까요? 라는 글에는 열이면 아홉, 버틸 수 있다면 1월생이 나을 것이다라는 댓글이 달려있다. 그런 말들에 힘을 실어주는 여러 책과 논문들이 있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는 캐나다 하키 선수들의 대부분은 1~3월생에 태어난 자들인데 1월 1일을 만나이 기준으로 삼다보니 어린 나이 때부터 월령효과가 발생한단다. 나이가 어릴 때일수록 월령효과가 더 극명하게 드러나 잘하는 애들은 계속 잘한다는 평가를 받아 성공이 누적되고, 못하는 아이들은 계속 못하는 평가를 받아서 실패가 누적되는 '복리현상'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이 책이 하는 말은 나름 논리적이다. 실제로 우리는 삶에서 긍정적 효과를 누리면 누릴 수록 더 긍정적인 결과를 쟁취할 수 있다. 그래서 "할 수 있다!"를 외치며 본인을 최면에 거는 것 아닌가? 그러다보면 정말로 해내기 때문이다. (이 '복리효과'에 대한 이야기는 12월생 아이 2편에서 다루기로 해보겠다)




그런데 나를 경악케하는 한 글을 발견하였으니 바로, 한국노동경제학회에 조현*이라는 사람이 올린 <12월생은 두 번 불리한가? 블라블라블라>라는 글의 서문이다. 자랑스럽게도 본인 성명을 다 오픈해놓고 올린 엄청난 서문이니 명예훼손 따위를 논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초등학교 취학기준일이 2010년 입학생부터 1월 1일로 변경되어 1~12월생이 동급생이다. 이에 1월생이 동급생 중 나이가 가장 많고 12월생이 가장 어려, 부모는 12월 출산을 기피할 유인이 있다. 이 경우 12월에 출산하는 엄마는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지 않은, 즉 사회경제적 배경이 좋지 않은 엄마일 가능성이 있는데, 본고는 이를 분석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석 결과 12월생 엄마는 다른 월 엄마 대비 학력 수준이 낮고 나이가 어리며 근로 확률이 낮다. 이 결과는 12월생이 동급생 중 나이가 가장 어릴 뿐 아니라 부모 배경 역시 좋지 않아 학교나 노동시장에서 이중으로 불리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우와. 이 서문을 읽자마자 순식간에 내가

- 다른 월 엄마 대비 학력 수준이 낮고(석사 졸업함)

- 나이가 어리며(만 35세에 출산함)

- 근로 확률이 낮고(작은 회사이지만 창업자이자 대표임)

- 사회경제적 배경이 좋지 않은(대전 대덕연구단지에서 초중고등학교 나옴 엄빠 둘 다 박사)

엄마일 가능성으로 분류된다는 것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학자라는 사람들이 '평균'이라는 멋진 핑계를 망토 삼아 저런 망언을 쏟아붓고 있고 그 글로 원고료를 받아간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혹자는 내가 1월 출산 예정이었으니 저 논리에서 벗어나는 것 아니겠냐고 하지만 나는 1월 출산을 예상하고 아이를 계획하여 가진 것은 아니다. 생길테면 생겨라라는 마음으로 가장 빠른 타이밍에 맞춰 나에게 기회를 줬을 뿐이다.


평균을 논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예외는 있다"는 요술봉으로 그 비판의 앵글에서 벗어나려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는 약 1000개인데, 그 1000개라는 숫자는 확률적으로 의미있는 모수거든? 근데 그 모수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걸 말했을 뿐이야. 오차범위 내에서 유효하다는 말이니까 그 오차범위를 벗어나면 되겠지. 라고 요리조리 피해갈 것이 분명하다.




얼마 전 우리 회사에서 신상품을 개발했는데 개발 과정에서 제작한 시제품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대량으로 제작을 마친 후에 많은 숫자에서 하자가 발생했다. 제작소와 협의 끝에 많은 하자들을 복구할 수 있었지만 아주 경미한 하자, 그러니까 상품가치 자체에는 문제가 없으나 내 눈에는 보이는 그 미세한 하자들 때문에 일주일 내내 일을 하면서도 뇌의 한 쪽 구석에서는 그 하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고민했었다. 자꾸 그 상품들을 보며 한숨을 푹푹 쉬는 내게, 나의 오랜 친구이자 우리 회사 직원인 Y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언어 등급이 1등급이면 잘하는 것, 2등급이면 평균, 3등급이면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평균은 5등급이야."


신상품의 퀄리티에 집착하는 내 눈으로 보기에는 이 하자들이 너무 거대한 산처럼 보였지만 우리 회사에 갓 들어와 우리 회사가 제작하는 상품을 많이 보지 못했던 半일반인의 시선에서 보면 이 또한 훌륭한 상품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들어도 내 눈에는 보이는 것을 모른 척 할 수 없어 마지막 검수때까지 수 백 개에 달하는 전 상품의 포장을 다 푸르고 내 눈에 하자가 보이는 상품이면 모두 양품으로 교환하고 재포장하여 上품들만 출고하긴 하였지만, 그 말이 두고두고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목표가 50%일 때와, 목표가 100%일 때는 그 기준이 다른 것이다.




누구나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지만 그 평범함이 표준정규분포의 중앙값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12월생 아이들도, 12월생 아이를 갖고 있는 부모들도 그렇다. 모두 아이를 90% 이상의 잘 나가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한다. 키도 80% 이상, 학업도 80% 이상, 돈도 80% 이상에 들어가는 삶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물론 그렇게 되지 못할 요인들도 다양하다. 유전자가 다르거나, 12월생 엄마들을 단박에 후려치기한 조현*씨가 말하듯 사회경제적 배경이 다를 수 있다. 그 뿐이랴? 부모가 이혼하거나 부모 중 하나가 일찍 세상을 등질 수도 있고, 정말 최악의 가정으로는 아이가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모수라는 것은 이 모든 경우의 수를 다 포함한다고 가정한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양 극단의 경우의 수는 뺄 수 있겠지만) 그 모수에서 표준정규분포라는 것이 나온다. 평균은 평균일 뿐, 모든 경우의 수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생후 0년에서 4년, 길게는 생후 8년까지의 월령에 의한 발달 차이는 자연의 섭리이다. 12개월이면 성장을 마치는 강아지나 고양이들이 한 개월 한 개월이 다른 것과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20년에 달하는 성장기간을 가지고 있다. 그 20년 동안 복합적인 자극과 개인적 동기의 결과물이 바로 지금의 우리인 것이다. 우리 주변에 명문대에 간 빠른년생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가. BTS 뷔도 12월생이다. 한참 많은 것을 배우고 받아들일 시기의 아이들에게 12월생이라는 딱지를 붙여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는 부모의 결정이다. 평균을 뛰어넘는 사례들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많다. 사실 평균대로 가는 사례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뷔를 논할 필요도 없다. 당신 주변에 누가 1월생이고 누가 12월생인지 맞출 수 있는가?


조현*와 같은 노동경제학회의 누군가가 하는 '평균'이라는 단어는 언제든지 본인이 피할 수 있는 여백을 마련하고자 하는 자가 선택한 비겁한 도구에 불과하다. 똑같은 평균이라는 단어일지라도 조현*가 사용한, 아이의 생월이 엄마의 미진함에 비롯된 것이고 그것이 그 아이의 노동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라고 말하는 자들을 말끔히 무시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같은 논리로, 막연히 12월생에 대해 부정적으로 논하는 온라인상의 무명인들의 말 역시 들을 필요가 없다.


반면 평균을 논하면서 더 나은 학제 개편, 학업 단계를 논하는 자들은 마땅히 할 일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말은 유의미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그 평균이 내 아이에게도 적용될 평균일지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을 가져야 하고, 이미 벌어진 상황을 지혜롭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과 그 신념을 뒷받침할 논리,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평균을 반박할 수 있는 결과를 가지고 있어야한다. 다행히 월령 차이에 따른 학습 부진 혹은 학습 우수 여부에 대한 논의는 교육계에서도 분분하다. 누구는 고등학교 때까지 차이가 있다고 하고, 누구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유의미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극적인 결말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월령 차이가 오-랫동안 유지된다고 말하는 자에게 더 fan이 많고 더 오래 회자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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