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대학병원 전원과 응급제왕, 그리고 신생아중환자실
임신 전에는, 임신 중에도 이벤트라는 것은 나에게 없을 거라고 여겼던 안일한 산모, 양벼락. 잔병(알러지, 혈압, 생리통 등등)은 많았지만 기본적인 체력이 매우 좋았던 한 사람으로서 건강에 대해서는 큰 걱정이 없었던 이 여인은 임신을 하고나서야, 더 정확히는 임신 막바지가 되어서야 임신과 출산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알게 된다. 혈압이 있었던 터라 항상 임신중독증이 올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균형잡힌 식단으로 생활하고 혈압약도 꾸준히 챙겨먹었으나 응급분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1. 임신중독증 의심의 시작
나는 고혈압인 걸 알고 혈압약 먹으면서 시험관으로 쌍둥이를 임신했고, 임신 중에도 계속 혈압약 복용하면서 혈압 관리하고 있었던 고혈압 확진자(?) 이다. 되돌려 생각해보면 임신중독증을 조심해야하는 요인을 여러가지 가지고 있었다. 임신중독증은 고령산모, 초산, 고혈압, 당뇨, 다태아 임신, 임신중독증 기왕력 등의 인자를 가지고 있는 경우 잘 발생한다고 한다. 나는 출산시점 기준으로 만나이 35세로 고령산모이고, 초산이고, 고혈압이고, 다태아 임신을 하고 있는... 빼박 고위험 산모이자 임신중독증 고위험군이었다. 난임을 졸업하고 뵌 나의 산과 담당선생님은 분당제일 한성* 박사님이었는데, 항상 쌍둥이는 이벤트가 많으니 조산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고 말하셨다.
어쨌거나 고혈압 환자이지만, 원래부터 백의혈압이 있어서 임신을 시도할 시기부터도 병원 예진실만 가면 혈압이 130/80 정도 나왔었다. 가끔 더 높게 나오면 140/90 나오기도 했고. 시험관 할 때부터도 혈압이 그 모양이었다. 시험관 시작하기 전에 내과에서 혈압약부터 처방받아야했기에 내과를 주기적으로 다니고 있었다. 처음에 혈압약을 처방받을 때는 고혈압은 확실했고, 약을 먹으면 혈압 관리가 잘 되는 편이었다. 시험관에 성공하고 임신기간 동안 혈압이 오르락내리락 거릴 때마다 '백의혈압일 수 있으니 내과에 다녀오라'는 말 많이 들었는데 내과 주치의 선생님은 정상이라고, 백의혈압 맞는거 같다고 하셨다. 그러나 31주차부터는 백의혈압이라고 보기에도 너무 높을 정도로 혈압이 높아졌다. 내가 봐도 너무 심해서 (150/90, 160/100) 집에 있는 가정용 혈압계로 매일매일 혈압 체크하면서 사진을 찍어놓았다. 여전히 집에서는 정상이었다. (120/80) 이때까지 단백뇨는 나오지 않았다.
32주차에는 혈소판 수치가 낮아졌다. 33주차에 들어서니 없던 단백뇨가 1씩 빠지게 되고, 이때부터 박사님께서는 1월 4일로 예정돼 있던 분만 일자를 12월 말로 앞당기자고 말씀하시거나 오늘 당장 낳아도 이상할 것 없다고 말씀하셨다. 34주 1일차에 진료받으러 갔는데 혈압 높고 + 단백뇨는 trace + 혈소판 수치 더 낮아지고 + 다리 부종 생기고. 임신중독증에서 말하는 여러가지 증상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ㅎㅎㅎ 아 이제는 정말 피할 수 없는 임신중독증 상황이다 라고 박사님께서 판단하신 것 같았다.
박사님께서 대학병원으로 지금 전원하자고 오늘 당장 응급실로 들어가서 분만해야할 것 같다, 임신 중 혈소판 수치가 낮아지는 경우이면서 임신 중독증이 아닌 경우도 있지만 지금은 여러가지 수치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위험해지기 전에 분만하는게 맞다고 말씀하셨다. 뭔가 나랑 남편 다 0_0....... 표정이 이랬고 ㅎㅎㅎ 무엇보다도 혈소판 수치가 아주 낮기 때문에 분제에서 수술하면 지혈 문제 등 위험이 더 크기 때문에 안된다고 보신 것 같다. 결과적으로 그건 맞는 말이었다. 수술 중 급성 출혈이 있어서 수술 후에 철분 수치가 뚝뚝 떨어졌었고, 그 이후에도 무시무시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원하게되면 집에서부터 거리도 그렇고 여러번 가본적이 있던 곳이라 분당서울대로 해야지 생각했는데 박사님께서는 지금 서울대는 코로나 병상이 가득차서 미접종자인 내가 가기에는 너무 위험하다고 그 전부터도 여러번 주저하셨다. 코로나가 요즘 너무 심한 것도 맞는데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박사님께서 연세대학교 출신이라 세브란스에 더 잘 아는 분이 많으셔서 박사님만 믿고 세브란스로 가게 된 것도 있는 것 같다. 병원을 급히 옮기면서 강남세브란스 후기를 찾아보는데 정보가 정말 너무 없어서 좀 걱정되긴 했지만.. 그냥 박사님만 믿고 갔던 것 같다.
2. 강남세브란스로 전원, 수술은 오늘이다.
진료 의뢰서와 여러가지 서류들을 발급받아서 세브란스로 출발한다. 진료 의뢰서에는 강남세브란스 산부인과 '김민* 교수'님께 의뢰를 드리는 내용이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박사님도, 박사님 담당 간호사님도 "바로 응급실로 밀고 들어가라, 외래 잡고 들어가면 늦어진다"고 신신당부를 해서 안내받은대로 걍 응급실로 밀고 들어갔다. 별로 응급해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천천히 두발로 걸어서 ㅎㅎㅎㅎㅎ 그런데 응급실 접수 마치고 나니 갑자기 베드에 눕게되었고 온갖 의료기기들이 나에게 달라붙었다!
처음에는 내 팔에 혈압계를 달고 주기적으로 혈압을 체크했고, 소변검사가 필요하다며 소변줄을 꽂았다. (아니 그냥 내가 스스로 소변 담아오면 안되냐고 묻고싶었는데 다들 무슨 이야기를 들으신건지 다급해하시면서 정말 응급상황처럼 되었다.) 소변줄을 꽂으니 방광염 걸린 것처럼 계속 화장실 가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의사분들이 그냥 소변보듯이 힘 푸셔도 된다고 소변은 절대 안 샌다고 하셨지만 기저귀 떼고 30년 넘게 오줌보를 조절하며 살아온터라(?) 그렇게 맘 놓고 편히 있을 수는 없었다. 소변줄의 불편함을 겪는 동안 피도 세 병이나 뽑아갔다. 심전도 기기도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었다. 아이들 태동검사하는 기계도 배에 뚝뚝 붙었다. 여성병원에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태동검사를 여기 와서야 겨우 하다니. 수축이 주기적으로 잡힌다고 그러는데 어이가 없었다. 나는 수축이 하나도 안 느껴지는데 수축이 주기적으로 잡힌다니 정말 내 몸은 왜 이렇게 둔감한걸까 피식피식 웃어댔다. 이렇게 여러가지 검사를 하는 와중에 질초음파도 보고, 배초음파도 보면서 누가 머리가 위에 있고 아래있고, 이런 것들을 체크하곤 했다. 이때까지만해도 나는 아주 여유로웠다.
참, 사족을 좀 달자면. 모든 분들이 나에게 친절했다. 연세대학교 의대출신 분들이라 그런지 나의 산과 주치의, 난임시술 주치의를 모두 알고 계신 분도 계셨다. (그러고보니 나의 임신의 시작과 종결은 연세대 분들과 함께하게 되었군.) 나에게 최대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해주려고 엄청 노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처한 상황이 매우 긴급한 것으로 보이는데, 또 그렇지 않게 느껴지게 도와주셨다.
응급실에 누워있는 동안 레지던트 같은 분, 전문의, 산과 교수님(김민* 교수님 말고 다른 분) 여러명이 나에게 와서 여러가질 묻고 가셨다. 원래 혈압이 어땠는지, 임신은 자연인지 시험관인지, 초산인지 경산인지, ......그리고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나를 떠났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혈압은 혈압 낮추는 약을 넣어서 어느정도 안정돼 있지만, 피검사 결과 혈소판 수치가 안좋다. 단백뇨도 2씩 빠졌다. 임신중독증 중에서도 위험한 헬프증후군으로 보인다. 지금 병실이 안잡혀서 그런데, 병실만 잡히면 오늘 수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병실은 잡힐 것이니 오늘 수술하게 될 것이다. 오늘 수술 들어가는게 낫다, 오늘 수술하시라, 수술은 오늘 ......."
그때서야 알았다. 아, 수술은 오늘이구나.
3. 비상상황 속에서 드디어 만난 담당 의사
남편과 나는 침착하게 각자 해야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원무과 접수나 기타 사항들을 처리하고 있었고 나는 나대로 긴장 풀면서 오늘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아이들이 너무 놀랄까봐 평정심을 최대한 유지하고 있었다. 세브란스의 '전통 대학병원'다운 면모에 소비자인 우리가 알아서 묻고 챙기고 요구하고 뛰어다녀야할 일들이 많아서 아주 놀라웠는데 이건 다음 기회에 적어보겠다. 어쨌거나 의사분들의 말씀처럼 나의 병실은 잡혀버리고 수술은 결정되었다. 살면서 처음 받는 수술인데 나를 수술해주실 분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수술장 가는 것은 정말이지 매우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모두들 오늘오늘을 외치고, 나와 남편도 수술 동의서에 싸인하면서 '뭐야 진짜 오늘이야?' 하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긴박했지만, 정작 환자인 나는 아무 증상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임신중독증의 무서운 점이다.
자 이제 침대가 슬슬 움직이더니 수술장으로 간다. 수술장 복도가 열리는 문 앞에서 남편이 "잘 하고 와" 해서 나도 "응 나 다녀온다" 하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과 헤어지고나니 내 옆에 파란 수술복 입으신 분들이 둘러섰다. 그 중에 갤탭으로 추정되는 패드를 들고 계신 남자 의사분 한 분이 "이 건은 제너럴이지? 제러널을 해야되는거야 아니면 할지말지야? 해야되는거지?" 라며 주변 분들에게 확인을 하셨다. 단순한 궁금증에 그냥 "제너럴이 뭐에요?"하고 물어봤다. 전신마취라고 한다. 그 남의사가 설명해주기를 '혈소판 수치가 낮아 출혈이 심할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하반신 마취는 안되며, 뱃속의 아이들에게 마취제의 영향을 최소화 하기 위해 마취는 제일 마지막에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마취가 들어가기 전 수술이 시작될 것이고 통증이 느껴지거나 의식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오호라... 만약 그런 상황이 오면 그것은 좀 당황스럽겠는데..'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냥 눈만 꿈뻑거리고 있었다. 옆에 있던 다른 의사분이 "나도 제왕할 때 전신마취였는데~" 이러시길래 "오왕 선생님두 제왕하셨구 전신마취도 하셨구나.." 이런 대화를 했던 기억도 있다. 왠지 그 의사분의 경험담을 들으니 의사도 제왕하고 전신마취하는데 뭐 별일 있겠나 싶었다. 어쨌거나 제너럴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주신 남자 의사분께서 "아니 이 환자분 왜 이렇게 침착하지?" 하고 혼잣말인 것 같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는 톤의 목소리를 내보냈다. 갑자기 내 자신도 이 상황을 3인칭 시점에서 직관하게 되면서 '어, 그러네. 나 하나도 긴장 안했네, 왜지?' 싶었다. 내 인생에서 제일 긴박한 순간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심장 쿵쾅거리는 거 하나 없었던 것일까. 한가지 생각을 계속 하기는 했다. 내 마음이 요동치며 벌벌 떨면 뱃속의 아기들이 더 무서워하고 힘들어할 것 같다는 생각. 사람이 진짜 비상상황을 대면하면 이렇게 되는건가 싶었다.
그러고 수술장에 들어가서 수술대 위에 오르는데, 오르자마자 대여섯분이 내 옆에 달려들더니 옷 벗기고 팔 고정시키고 산소호흡기 대주시고 배와 다리에 소독약을 엄청 발라주셨다. 덕분에 나는 급격히 추위를 느끼기 시작했고 몸이 바르르 떨렸다. 심호흡을 하면서 몸을 다스리려고 하는데 진짜 수술장은 엄청 춥더라. 게다가 모든 분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수술대 위에서 눈 굴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그 상태로 사태파악까지 해야하느라 뇌가 엄청난 각성상태였던 것 같다. 모두들 마스크를 끼고 의료용 두건(?)을 두르고 계시는 바람에 아까 응급실에서 뵈었던 전문의 선생님 한 분 말고는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처음 보는 의사 선생님이 동그란 눈을 빤히 뜨고 나의 눈을 찐하게 깊이 바라봐주셨다. 수술해주시는 분이라는 걸 직감했다. 저 분이 김민* 교수님이구나.
4. "숨이 안쉬어져요, 배가 너무 아파요, 너무 추워요"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들고나니 숨이 잘 안쉬어지면서 너무 춥고 배가 엄청 아팠다. 그래서 계속 세가지 말만 했다. "숨이 안쉬어져요, 배가 너무 아파요, 너무 추워요"
숨이 안 쉬어지는 공포가 엄청났다. 내 머리 쪽에서 산소 호흡기를 들고 계셨던 남자 의사분께서 입 앞에 호흡기를 갖다주시면서 "산소입니다. 크게 들이쉬세요, 내쉬세요. 심호흡하세요." 라고 가이드해주셨는데 그래도 내가 원하는만큼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몸도 바들바들 떨렸다. 무엇보다 배가 정말 아팠다. 계속 있는 호흡을 다 끌어모아 내쉬며 의료진에게 말했다. "숨이 안 쉬어져요, 숨이 안 쉬어져요. 너무 추워요, 배가 너무 아파요." 이 때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나왔는지, 내 배에 아이들이 나가긴 나갔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나란 닝겐 이래갖고 어디다 써먹을까?
그러다가 배에 통증이 조금씩 사그라들면서 호흡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내 위에 따뜻한 걸 덮어주셔서 추위도 견딜만했다. 많은 분들이 수술장을 나가셨고, 이제 제가 누워있는 침상이 옮겨지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병실이 준비가 덜 됐다며 다시 수술장으로 나를 밀어넣었다. 웬 어려보이는 남자 의사분과 함께. 아, 안그래도 긴급한 상황 버티느라 고생했는데 왜 또 수술장에 들여보내니. 내 침대는 다시 수술대 옆에 붙어있었다. 내가 누워있던 수술대를 다시 보는 기분이 정말 묘했다. 수술대 위에 놓인 천에 피가 흥건했다. 저거 내 피겠지? 내가 있던데니까? 나는 유체이탈이 된 건 아닌지 싶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이상한 기분으로 수술장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나와 함께 수술장에 계시던 그 어려보이는 의사분은 계속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다른 분들께서 내가 있는 수술장을 오며가며 나를 어디로 보내야한다, 어디다 연락을 해야한다 그 남의사에게 요청했지만 그 의사는 "저는 지금 이 환자분 킵해야되는데요?" 라고 말하면서 최대한 그 일을 남에게 떠밀려고 했다. 당장 배 꼬매고 마취 풀린지 얼마 안 된 내가 느끼기에도 되게 일하기 싫은가보다 싶었다. 이봐요. 당신이 나를 킵하면서 하는건 핸드폰 보는거 말고 없잖아요.
내가 진짜로 가게될 병실 말고, 나와 남편의 PCR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 있을 수 있는 병실이 준비가 완료되면서 드디어 수술장을 벗어나게 되었다. 무슨 정신으로 병실로 갔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병실에 가니 남편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5. 의외로 없는 통증, 제왕 하길 참 잘했다(?)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남편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수술 들어가고 난 후 10분 정도 지났을까, 아이들이 인큐베이터에 실려서 나왔다고. 우와 진짜 그렇게 빨리 아이들이 나올 수 있다니. 근데 나의 수술은 한시간이 넘도록 진행되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자궁 내부를 정리했어야 했을 것이고, 자궁수축이 잘 되는지 봐야했을 것이고, 봉합하는데도 꼼꼼히 봐주셨을테니까.
아이들은 34주 1일만에 세상 빛을 보게 되었고, 먼저 세상에 나온 딸아이는 1.86kg, 아들은 1.76kg 으로바로 니큐에 들어갔다고 했다. 남편이 니큐에서 급히 찍은 사진을 보니 한 아이는 남편을 너무 똑 닮았고, 한 아이는 또 나를 닮은 것 같았다. 그런데 나란 엄마는... 갑자기 푹 꺼진 배가 어색하기도 했지만, 난생 처음 하는 수술이라 어떤 통증이 밀려올지가 그 무엇보다 걱정되었다. 아이들은 건강하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건지 아니면 내가 아직 엄마 자격이 없어서였는지. 아무튼 나는 내 배의 통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아플지 한 번 보자.
생리통 같은 통증이 있었다. 나는 생리통으로 대학병원에 앰뷸런스로 실려간 전력이 있을 정도로 생리통이 심한 사람인데, 제왕절개 후 느껴지는 배의 통증은 약한 생리통 정도였다. 아무래도 무통의 힘이 아니었나 한다(약빨 잘 받는 체질.) 조금씩 살살 움직이면 좋다는 말을 누누히 들었기 때문에 다리를 좌우로 움직이거나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는 약소한 운동을 하면서 통증의 양상을 느껴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통증이 심각해지지는 않았다. 원래 고통을 잘 못 느끼는 편이긴한데 이번에도 그 덕을 본 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통증보다 큰 문제는 물을 못 마신다는 것이었다. 입에 물 묻힌 거즈를 물려달라고 남편에게 수차례 요청하다가, 아예 그냥 거즈를 자주 갈면서 거즈에 묻혀진 물을 열심히 섭취했다;;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신 것 같다;; 이렇게 마실 정도면 그냥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게 낫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물을 참는 것은 정말 힘들더라. 오랜 갈증 끝에 남편과 나의 PCR 검사결과가 음성으로 나오면서 우리는 새벽 1시경 드디어 산부인과 병동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그리고 새벽 1시부터 나는 물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4인실이지만 우리밖에 없는 산부인과 병실이 왠지 쾌적했다.
나는 그날 밤부터 내 힘으로 앉아있을 수 있었다(;;) 남편은 도대체 뭐냐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나 역시도 우와 이거 뭐지 무통의 힘인가 하고 생각했더랬다.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소변줄을 제거하자마자 침대에서 벗어나 일어나보겠다!라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몸을 일으켰는데, 간호사가 '천천히 움직여야된다'고 당부했기 때문에 정말 천천히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10분만에 침대에서 벗어나 일어서 있을 수 있었다(;;;) 무리하면 안된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다시 침대에 앉았다가, 이번엔 걸어보겠다!라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침대를 벗어났는데, 그 길로 산부인과 병동을 한바퀴 돌고 왔다. 배가 뻐근하긴 했지만 배를 칼로 절개했다는 느낌은 정말 없었다. 여러 후기 속에 등장하는 장기가 쏟아지는 느낌도 없었고 배가 불타는 느낌도 없었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고통을 잘 못 느끼거나 잘 참는 체질이긴 했다. (그렇다면 내가 경험한 그 생리통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집도해주신 교수님께서 명의이신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며 + 무통의 힘은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몇 걸음 걷다가 어지러움이 밀려와 급히 병동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수술은 수술이네 ㅎㅎㅎ
6. 니큐에 전달할 모유, 손으로 유축해보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을 니큐(NICU)라고 한다. 인큐베이터는 들어봤는데 니큐는 뭐지? 했지만 쌍둥이 엄마들에게는 익숙한 단어인 것 같다. 아무래도 쌍둥이 임신이 고위험 임신이다보니 조산이나 태아성장지연 등 다양한 원인으로 니큐에 가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있던 병원에는 입원 환자에 한해서 니큐 면회가 가능했습니다. 나는 산모로서 입원했기 때문에 아이들 면회가 가능했다. 게다가 우리는 쌍둥이를 낳았기 때문에 각 아이에게 입원한 보호자 1명씩, 총 2명이 면회가 가능했기 때문에 입원환자인 나 1명, 나의 상주보호자인 남편 1명이 모두 니큐에 아이들 면회를 갈 수 있었다.
니큐에서는 매일 아침 문자를 보내준다. "양보라 아기 1 오늘 몸무게 1.86kg 이고 20cc씩 먹고 있습니다. 모유가져오세요."
니큐에 입원한 아이들에게 줄 엔파밀이라는 모유강화제와 폴리바이졸이라는 비타민제 등을 가져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해외에서 직구해야 받을 수 있는 물건이라서 남편은 아이들이 태어난 날 바로 엔파밀과 폴리바이졸을 주문했다. 그런데 모유는 직구가 안된다. 모유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수술하고 다음 날 이 문자를 받았을 때 모유는 언제 나오는 것인가? 싶어서 애꿎은 가슴을 조물조물 해봤지만 무언가가 나올 기미는 없었다.
퇴원을 하루 앞둔 날, 병원 밥을 먹고 쉬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에서 축축한게 느껴졌다. 그래서 환자복을 슬쩍 들춰 가슴을 보니 읭...? 내 가슴에서 뭐가 나오고 있었다! 남편에게 "나 모유나오나봐!" 하고 알렸다. 근데 이 병원에는 유축기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모유를 꺼낼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손으로 짜보기로 한다. 급히 입원하느라 못 챙겨온 가방을 남편의 동료가 가져왔고, 그 안에 모유저장팩이 있다는 걸 기억해냈다. 모유저장팩을 꺼내서 개봉하고 젖을 손으로 짜보았다. 한 방울이 나오긴 하는데 이 상태로는 열흘이 걸려도 모유저장팩을 채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합심하여(?) 모유를 짜내보기로 한다. 남편이 짜고 내가 받아내고(!)를 반복하다보니 노란 초유가 한 방울 두 방울씩 모인다. 이렇게 어렵게 모아놓은 모유저장팩 2개 위에 양보라 아기 1, 양보라 아기 2 의 이름을 적어 니큐 문 앞에 놓여진 아이스박스에 넣고 벨을 눌러 "모유 배달왔어요~"라고 말한 후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제왕절개 후 니큐에서 아이를 만나 안녕 내가 엄마야~ 하고 말 걸어주는 것 말고는 처음으로 부모 노릇 한 것 같아 뿌듯했다. 이렇게 부모가 되는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엄청난 피로감에 2시간 동안 정신을 잃고 잠에 들었다. ㅎㅎㅎ
7. 3박 4일만에 퇴원, 아이들과 잠시 헤어져 조리원으로
대학병원은 하도 대단한 케이스를 많이 봐서인지, 나같은 일반 산모(?)에게는 얄짤 없이 3박 4일 후 퇴원하게 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을 니큐에 넣어놓고 퇴원하는 길이 참 씁쓸하긴 했지만 조리원에 가서 얼른 몸을 회복하자는 생각이 앞섰다(나란 엄마 진짜 어디다 갖다 쓰지...) 다리는 코끼리처럼 부어서 걸어다니기가 힘들 지경이었고 가슴은 불어나는 모유 때문에 터질 듯 답답했다. 그래서 짐을 바리바리 싸서 조리원으로 갔니다. 다시 세브란스로 돌아오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