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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그 앞에서 뒤를 보다

잘 가라 20대

by 바오로

말로만 듣던 서른, 그 요망한 것이 결국 나의 턱밑까지도 쫓아왔다.


나는 나이에 크게 연연하는 성향은 아니라고 자부한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그때가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취업 합격 통보를 받은 후 대학교 졸업 전까지의 기간 동안 나는 또 그 생각을 했다. 정말로 다시는 오지 않을 행복한 시간을 내가 지금 보내고 있노라고. 그리고 요즘의 나는 다시 생각한다. 결혼은 했으나 아직 아이는 없는 지금 나는 내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한 시간을 갱신하고 있다고. 현재를 낙관하는 것인지 미래를 비관하는 것인지 나는 주로 나의 지금이 좋았다. 그렇기에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잠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함이고, 그러기에 10년은 적절한 단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러나 며칠 후부터 더는 20대가 아니라는 사실은 매우 유감이다.


나는 전형적인 20대를 보냈다. '전형적'이라는 것은 다분히 주관적인 나의 상상 속 20대가 기준이다.

더 어렸던 날에 상상했던 나의 20대처럼 나는 딱 그런 20대를 보냈다. 신나는 대학생활, 해외 경험과 취업, 연애와 결혼. 다시 돌아가도 이렇게 찰떡같은 20대를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은 그런 11년이었다.


'빠른'이라는 제도 덕분에 나는 20대로 11년을 보냈고, 19살에 대학교에 입학했다. 20대를 일찍 시작해서였는지 내가 속한 조직에서 나는 주로 막내였다. 대학동기도, 교환학생이나 스터디 그룹에서도, 취업동기들과도 그리고 부서 배치를 받은 이후 3년차까지도 신입사원들을 제치고 가장 막내였다. 늘 그 또래에서 어린 축에 속했기 때문에 나는 20대 초중반이 참 길다고 느껴졌다. 20대 중반부터 회사에서 방학도 개학도 학년도 없는 365일을 보내기 시작하니 사실은 나의 남은 20대가 굉장한 속도로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이 나와 서너 살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고야 번뜩 이제 나도 30대가 되어 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내가 20대의 나에게 기대했던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뭔가 마구 해보는 것이었다. 고리타분하지만 내가 꿈꾸었던 전형적인 방향으로 계속 두드려보는 거였다. '20대'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모함과 활기참을 등에 업고, 의욕이 앞서는 많은 것들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이전에 느꼈던 감정보다 더 큰 감정의 경계를 배우고, 더 다양한 상황과 사람을 만나고, 그 속에서 새로운 내 모습을 만났다. 원하는 것을 이뤄도 보고,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작은 위험으로 큰 교훈을 얻은 경우도 많았다.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20대의 끝에 선 지금 행복함과 안정감이 주는 만족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나의 20대가 잘 완성된 것 같다.


30대의 나는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다. 그렇게 정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단 한 번도 나의 30대를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나의 블로그에 적힌 소개글에 ' ... 30살까지 배우고...'라는 문구가 있다는 것만 봐도 나는 서른 살 이후의 나를 머릿속 어느 세포에도 담아본 적이 없다. 승진을 하겠지, 아이가 생기려나, 기록은 열심히 하고 있을까. 무엇을 하며 살지는 모르겠으나 10년 후의 나는 원칙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서른 살을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라는 뜻에서 이립(而立)이라고 한단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나만의 확고한 원칙이 부재해서 어떤 가치를 판단하는 데에 자주 어려움이 있다. 내 결정에 판단 근거가 될만한 비전이 앞으로의 10년 동안 정립되고, 그 원칙으로 하여금 나 스스로가 조금 더 차분하고 능숙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40대는... 일단 30대 해보고 생각하자.


얼마 전 '놀면 뭐하니?'에 윤종신 님이 나와서 '나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당신의 40대를 앞두고 쓴 곡이라고 했다. 나이에 대해 묘사한 초반 가사가 참 와 닿았다. 따지고 보면 그저 일생의 카운트에 불과한 그 숫자는 그러나 세상의 그 어느 숫자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추억이 담기고, 현재가 담기고, 기대가 담긴다. 멈추지도 못하고 빼기도 할 수 없기에 그 숫자 하나하나 값지다. 나이가 멈추는 날, 그 모든 숫자를 행복하게 열어볼 다짐으로 다가오는 30대를 맞이할 준비를 해본다.


Adieu 20s!!


윤종신 - 나이


안 되는 걸 알고 되는 걸 아는 거

그 이별이 왜 그랬는지 아는 거

세월한테 배우는 거

결국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

(중략)

이제서야 진짜 나를 알 것 같은데

이렇게 떠밀리듯 가면

언젠가 나이가 멈추는 날

서두르듯 마지막 말할까 봐

이것저것 뒤범벅인 된 채로

사랑해 용서해 내가 잘못했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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