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를 만들다.
코로나가 한창이었다. 같은 단지에서 확진자가 나오자 '혹시 나도..?'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가 코로나에 걸린다는 사실보다, 확진자가 된지도 모른 채 회사며, 동네를 마음껏 돌아다니진 않을까 하는 것이 더 큰 불안이었다. 사회적 거리를 두기에 이미 이 내가 사는 이 동네는 한적하고도 고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있고 싶을만큼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의 적적한 일상을 알았을까, 마침 언니가 클래스 101 이라는 어플을 소개시켜주었다. 수채화, 유화, 향초, 비누만들기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강의 수강권과 함께 강의에 필요한 모든 재료들을 패키지로 배송해주는 어플이었다. 그 중 내 눈길을 사로잡은 비누 만들기 강의. 됐다! 이거면 주말 내내라도 집에만 있고 싶을 것 같아 바로 주문했다. 세상이 좋아져도 이렇게 좋아졌는 지,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드리니 비누를 만들기위해 필요한 모든 재료가 집 앞으로 배송됐다.
비누를 만드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1. Melt-Pour 는 굳어있는 비누 베이스를 녹이고 색을 입혀 다시 굳히는 방법이다. 녹인 비누는 다양한 색을 첨가하여 실리콘 몰드에 담아내는데, 기성 몰드에 녹여서 한 번에 비누를 만들기도 하고, 비누곽같은 직사각형 비누틀에 색도 양도 마음대로 옮겨담아 만들기도 한다. 이런 MP 비누는 쉽게 굳기 때문에 바로 꺼내서 사용할 수 있다.
내가 신청한 강의는 Cold-process 방법으로 만드는 CP 비누이다.
2. CP비누는 각종 오일들을 저온 배합하고, 이를 가성소다액과 섞어 보온, 숙성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 낸다. 이 과정에서 조색, 아로마오일 블렌딩 비누 디자인 등등이 이루어진다. 한 마디로 손이 엄청 많이 가는 방법이다.
영상 속 선생님의 가이드에 따라 열심히 비누를 만들다 보면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두 시간 동안 만든 비누는 48시간 보온하여 비누화 과정을 거치고, 이 비누를 잘라 2주~4주 가량을 숙성해야 한다. 숙성이 끝나면 향이 날아가지 않게 비닐로 하나하나 포장한다. 하나의 비누가 만들어지기까지 거의 한달 가량이 소요되는 것이다. 이 작은 비누녀석이! 이렇게 만들어진 비누는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하고 집에서도 사용하는데, 나는 정말이지 아까워서 마음껏 써지지가 않는다.
두 시간 동안 허둥대고, 그 두시간을 증명이라도 하듯 비누를 만들면서 나온 산더미같은 설거지거리를 보면 가끔 현타가 온다. 시작은 이 취미를 통해 비누값도 아끼고, 더불어 친환경 비누 사용으로 환경보존에 앞장서고자 했다. 하지만 현실은 비누를 만들면서 나오는 플라스틱양이 더 많고, 재료값이 훨씬 비싸다. 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 밤 10시가 넘어서 비누를 자르고 있는 이유는, 재미있어서다. 내 손으로 뭔가 창조해내는 것도 재미있고, 이 비누를 선물로 받을 누군가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고, 다음엔 어떤 비누를 만들지 궁리하는 것도 재미있다.
나는 입사 후에야 취미라는 것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알게되었다. 방학도 없고 개학도 없고 소풍도 없는 그야말로 반복적인 루틴의 연속이다. 취미는 그 심심한 일상에 던져지는 조약돌 같은 것이다. 물결을 만들고 파장을 만들어 고여있던 물을 다시금 찰랑이게 만든다. 다만, 고인물을 잠시 찰랑이게 하기 위해선 그만큼의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돈도 열심히 벌어야 한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는 취미활동으로 풀고, 취미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일을 열심히 다녀야 하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아니 다 잃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