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 정확히 똑같은 주제로 남편과 세 번째 언쟁을 벌였다. 언제부터 이 시대는 안전형 투자자를 바보로 취급하게 된 걸까? 나는 그의 태도가 매우 불쾌했다.
남편과 나 사이에는 '공금이'라는 친구가 있다. 우리가 사귄 지 1년쯤 되던 해에 만들어진 공금이는 결혼 전에는 매월 30만 원씩 우리의 월급을 가져가서 데이트 비용을 소화했고, 지금은 각자 월급의 80% 정도를 가져가서 생활비를 전담하고 있다. 공금이에게 납입하는 생활비를 제외한 각자의 돈은 각자가 알아서 관리한다. 그러니 내가 그 돈으로 적금을 들던, 주식을 하던 그것은 상대방의 노터치 아래 오로지 본인의 주관적인 소견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같은 회사에 같은 년도에 입사했기 때문에 출장이 잦았던 남편이 많았으면 모를까 우리의 수입은 줄곧 비슷했다. 물론 서로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인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이렇게 저렇게 다 고려를 해보아도 지금 남편과 나의 자산상태로는 내가 이겼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결혼자금도 공금이에게 정확하게 같은 금액을 모았기 때문에 남편도 이건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남편이 절대 인정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나의 투자 방식이었다.
입사 2년 차까지만 해도 나는 지독한 안전형 투자자였다. '투자'라는 말을 붙이기도 민망할 만큼 적금과 예금으로만 돈을 관리했다. '안전형 저축자'가 나와 더 맞는 용어였다. 내가 돈을 모으는 방식은 금리를 통한 수익보다는 최소한의 어떤 금액을 내가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원금을 지키는 데에 있었고, 실은 부지런히 투자 정보를 구하고 다닐 자신도 없었다. 그러나 화폐가치가 지독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으므로 3년 차부터는 작은 돈으로 펀드도 해보고 주식도 시작했다. 그러나 주식도 펀드도 원하는 수익률을 달성할 때 까지는 무조건 '존버'였으므로 손절도 했다가 크게 이득도 봤다가 하는 공격적인 투자성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와 정 반대로 남편은 비교적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투자자다. 예금이나 적금은 저축이 아니라 이제는 돈을 갉아먹는 행위에 가깝다고 생각했고, 상당히 활발하게 주식시장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빚까지 내면서 투자를 하는 성향은 아니라는 거였다. 나는 다양한 드라마를 통해 '주식을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연애 초기에는 남편에게 절대 주식을 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으나 남편의 합리적 수준의 투자와 나의 계몽을 통해 본인 돈으로 하는 주식은 아주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남편도 나의 끊임없는 예적금 행보에 비웃음을 날리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나의 자본이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제지는 하지 않았다.
문제는 공금이의 '남은 생활비'였다. 가만히 두면 분명 갉아먹을 것 같은 느낌이 충만했다. 그러나 우리 둘 모두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서로의 성향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적금을, 남편은 주식을 주장할 것이 뻔했다. 같이 모으는 돈이기 때문에 둘 모두의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분산 투자를 하자는 얘기도 나왔으나 비율에서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이런 저금리 시대에 은행에 돈을 저축하고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기에 나도 저축만으로 가계경제를 이끌어갈 생각은 없다. 코로나 시대와 맞물려 나 또한 동학 개미가 되었고, 적지 않은 수익을 올렸지만 그러나 분명 예/적금이 주는 이점이 있었고, 솔직히는 남편과의 자산상태에서 그것을 증명해 보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적금만 하자"는 것도 아니고, "일부는 하는 것이 맞다"는 나의 주장에 남편은 꽉 막힌 사람과 대화한다는 듯 한숨을 쉬며 나를 정말 한심하고, 답답한 그야말로 old-fashioned 취급을 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비단 남편의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은 어딜 가도 온통 주식, 부동산 얘기뿐이다. 회사에서도 친구들을 만나서도. 심지어는 주식이나 투자를 테마로 한 프로그램도 여럿이다. 지금 같은 시대에 물론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는 것이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것도 사실이고 어쩌면 은행에 저축한 화폐가 언젠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안전형 투자자들을 바보 취급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조차도 주변에 아직 주식을 접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면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해보고 자신의 투자성향과 맞으면 하고, 아니면 마는 거다. 투자성향은 말 그대로 성향(性向)이다.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성질들의 경향 말이다. 각자의 성향이 있고 템포가 있는 법인데 어째서 이 시대는 무엇은 옳고, 무엇은 그른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일까.
애석하게도 남편과 나는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편이 이제 내가 공금으로 적금을 드는 것에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고, 나도 여유자금에 한해서 남편이 공금으로 주식을 하는 것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비율에 대한 얘기가 오갔고, 결국 우리는 '남은 생활비'를 없애는 방법을 택했다. 이사를 가기로 한 거다. 이제 한 동안은 투자할 돈도 저축할 돈도 없으니 휴화산이 될 테지만 언제고 활화산으로 다시 타오를 주제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