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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오로 Jan 18. 2021

현관을 청소하는 자 누구인가

집안일 초짜의 정신승리

    그것은 일종의 배신이었다. 물은 세상의 모든 얼룩을 지우기 위해 존재하는 줄로만 알았으나 그로부터 발현되는 물때가 나를 경악케 했고, 우주의 기운은 내가 건드리지 않은 곳에도 손수 먼지를 쌓았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 내가 신경 써야 하는 곳은 고작 세평 남짓의 내 방이 전부였다. 가끔 책상 한 번, 가끔 화장대도 한 번, 가끔 책장도 한 번 쓸고 닦는 정도였고, '가끔'의 주기는 그 모든 청소를 통합해도 그야말로 가끔이었다. 내 방만 깨끗하게 유지하면 내가 아니어도 집 전체가 깨끗했다. 그러나 독립을 한다는 것은 이제 내가 신경 써야 하는 반경이 작은 방 하나가 아닌 살고 있는 이 집 전체로 확장됨을 뜻했다. 그것이 이토록 무시무시한 의미인 줄 몰랐다.


    맞벌이에 아이도 없기 때문에 우리 집에 사람이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 한 여름에도 한 달에 공동전기세를 제외한 세대 전기료가 만 원 남짓이니 반은 빈 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왜. 어지를 사람도 없는 이 깔끔한 집에. 눈길 닿는 모든 곳이 나의 숙제가 되어버렸던가?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보이지 않았던 곳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모든 곳들을 관리하는 책임이 온전히 우리의 임무가 되어버린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 사용하는 곳도, 손이 닿지 않는 곳도 먼지는 어김없이 내려앉아 있었고, 매일같이 물을 흘려보내는 화장실 조차 어느새 보면 물때가 끼어있었다. 하루는 주방을 닦고, 하루는 서재를 정리하고, 하루는 안방을 치우고, 하루는 화장실을, 다용도실을, 거실장을 돌아가면서 청소하다 보면 결국은 매일이 청소의 연속이었다. 그나마도 한 바퀴 다 돌았다 싶으면 제일 처음 청소했던 그곳에는 언제 청소나 했었냐는 듯 다시금 쌓인 먼지가 우리를 비웃고 있었다. '집안일'이라고 하는 것이 티는 별로 안 나고 고생스러운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영원히 제자리걸음이라는 것은 새롭게 알게 되었다.


    끊임없는 집안일은 남편과 적절하게 나눠서 하는 데, 대체적으로 힘쓰는 일들은 남편이 많이 하고 나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들을 치우거나 청소기를 주로 돌리는 편이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들을 보기 시작한 것도 결혼한 뒤부터였다. 본가의 현관이 깨끗했던 이유가 엄마가 그곳도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로 한 번 씩 닦기 때문이라는 것도 '나의 현관'이 생기고서야 알았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현관에 생긴 신발 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들'은 절대 저절 깨끗해지는 법이 없었다. 냉장고나 베란다, 다용도, 현관, 세면대 손잡이, 장식품이 놓인 찬장 등이 그런 종류였다.

  

    처음 이 집에 입주한 순간처럼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집착 아닌 집착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금새 주말에만 반짝 집을 관리한다고 관리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집도 매일을 정성스럽게 쓸고 닦아야만 그 반짝거림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반짝거림을 위해 들인 노력이 생각 이상으로 티가 나지 않아서 매우 충격이었다. 먼지가 쌓이지 않은 깨끗한 상태를 일반적인 상태라고 생각하니, 청소를 하고 나면 당연한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걸까. 사실은 먼지가 쌓인 상태가 아주 자연적인 상태고, 반대로 청소를 한 것이 매우 특별한 상태라는 것을 널리 알려야 한다.


    깨끗했던 신혼집을 영원히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패기는 이제 잠시 내려놓고, 요즘은 그 빈 공간을 약간의 먼지가 오히려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이상한 믿음으로 채워가는 새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발행되고 나면 그 새댁은 다시금 걸레를 들고 눈에 보이지 않던 또 다른 어떤 곳으로 향할 것이다.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하지만,
불안은 삶의 자연적인 상태다.
평화는, 그 반대로,
아주 드물게 불쑥불쑥 찾아온다.
있기는 하다면.

- 리반엘리, 불안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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