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에 한 번 병원에 가는 것은 고역이다. 미동도 없는 이 배 안에 과연 생명체가 잘 자라고 있는지 무려 4주 만에 한 번 확인을 하는 것은 정말 기다리기 힘든 일이다. 오죽 궁금했으면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병원에 가서 아기를 확인하고 온 적도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그냥 궁금해서 간 것인 줄 알고 계셨던 모양인지 잘 크고 있으니 그 정도 아픔으로는 올 필요 없다고 하셨다. 그렇게 랑랑이를 만나러 병원에 가는 날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몇 달을 보냈다.
19주 차에 접어들던 저녁 무렵, 소파에 누워있던 내 배에서 꿀렁하는 느낌이 들었다. 응? 혹시!! 남편은 아직일 거라며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했지만 이것은 분명히 내 의지가 아닌 내 안의 움직임이었다. 어느 때는 뱀이 지나가는 것처럼 스르륵 하기도 했고, 어느 때는 배 안쪽에 안마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두두두 하기도 했다. 남편이 손으로는 느낄 수 없는 것을 보아 배 안쪽에서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손으로 느껴지지 않으니 남편은 잘 믿지 못했지만 태동이 분명했다.
20주 차가 가까워지니 태동이 점점 눈에 띄기 시작했다. 검진에서도 초음파를 보다가 아기가 발로 차는 순간에 내가 태동을 느끼기도 했다. 선생님도 이제 태동이 느껴지는 것 같다고 하셨다. 이제 가끔은 손으로도 태동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순간은 아주 짧지만 배가 움찔거리기도 했다. 움찔거리는 그 깜찍한 순간을 보기 위해 나는 종종 배멍을 때리기도 한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남편이 손을 대면 배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나는 이렇게 신기하고 재미있는데, 남편은 이 순간을 함께하지 못하니 좀 안된 마음이었다.
임신을 하고 나서 남편에게 '거저먹는다'는 얘기를 참 자주 했다. 일상생활의 갑작스러운 변화와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힘든 나에 반해 남편은 평소와 다름없이 열 달을 보내고, 또 진통하는 내 옆에서 몇 시간을 보내면 큰 수고로움 없이 양 손에 아기를 탁 안을 수 있다는 억울한 마음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임신 어플에서 주마다 바뀌는 '엄마의 변화, 엄마를 위한 조언'과 '아빠를 위한 조언'만 비교해봐도 몇 문단 씩 이어지는 '엄마의 변화'나 '엄마를 위한 조언'과는 달리 '아빠를 위한 조언'은 참으로 뜬 구름 잡는 한 문단 정도의 말들이 겨우 이어졌다. '엄마의 옆에서 함께 힘이 돼 주세요' 같은.
남편도 그런 사실들이 머쓱했는지 최대한 나를 위해 많이 배려해주고 많은 것을 도와주었으나 그러나 결국 임신은 내가 하는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태동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남편이 조금 안됐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신비롭고 재미있는 느낌을 나만 느낄 수 있다니,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가만히 누워있다가 랑랑이의 움직임에 실실 웃음이 세어 나오면 이런 감정을 함께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때부터 '거저먹는다'는 말을 잊기 시작한 것 같다. 남편이 못 얻어먹는 딱 하나, 태동이 주는 생소함과 기쁨이 작지 않았다.
태동이 느껴지고 난 후부터 나는 이전만큼 병원 가는 날만 바라보며 지내지 않게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랑랑이는 '나 여기 있어. 잘 있어.'하고 내게 신호를 보내온다. 태동이 느껴질 때마다 기특하고, 그 좁은 곳에서 꼬물거리고 있을 생각을 하니 귀엽다. 듣기로는 아직 중기라 태동으로 내가 아프지 않기 때문에 마냥 귀엽기만 한 거라고 한다. 후기가 되면 아기가 발로 차는 힘이 세져서 아프기도 하다니, 어느 순간엔 '태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거저먹는 것 중 하나가 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지만 일단은 귀엽기만 한 걸로!